오늘의 한국어로 《징비록》을 새롭게 펴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국방·군사·정치·외교·민사작전 등 모든 분야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대신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 기록이다. 조선에서 간행된 이후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새로이 간행했고, 중국 역시 임진왜란 전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영어판까지 나온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시인 김기택은 《징비록》 안에 깃든 원작자의 마음을 오롯이 되살리되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편안한 문체로 다듬었다. 또한 일평생 전쟁사 연구에 몸을 바친 임홍빈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선임연구원의 해설도 본문과 긴밀히 맞물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해설은 전쟁의 중요한 일지와 연대기 그리고 조선, 일본, 명나라의 전력과 무장의 실제를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미술작가 이부록은 한국과 일본의 임진왜란 전문 전사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는 국립진주박물관과 일본 오사카박물관의 전문자료를 섭렵하고, 임진왜란과 관련한 일본 측 군기물(반다큐멘터리, 반소설류)에 등장한 미술 형상을 참고해 이 책에서 새로운 형상을 제시했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이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집 『태아의 잠』, 『소』, 『껌』 등 7권, 동시집 『빗방울 거미줄』, 그림동화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중국의 군사역사, 전쟁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달빛을 베다》 《손자병법 교양강의》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소설 공자》 《서유기》 《현실+꿈+유머: 린위탕 일대기》 《의천도룡기》 《백록원》(공역) 《열세걸음》 들이 있으며, 한국 고전 군사문헌을 현대어로 국역한 《문종진법ㆍ병장설》 《무경칠서》 《백전기법》 들이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에서 공부했다. 《기억의반대편세계에서-워바타》 《세계인권선언》을 펴냈으며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 《동양철학 에세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들에서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화풍을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림만이 아니라 참여미술 프로젝트, 서재조형,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