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
영인 민족의 저력 (박정희 전집 4)
자주, 자립, 자조의 10년
<민족의 저력>의 초판은 5.16혁명 10주년을 맞는 1971년 3월 1일에 나왔다. 지나간 1960년대 10년간은 유엔개발계획이 선포한 ‘개발연대’이기도 했다. 개발연대 마지막 해인 1969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당시는 GNP로 계상)은 198달러. 2016년의 1인당 GDP 2만 7,539달러(명목)에 비하면 헛웃음이 나오겠지만, 그 10년 전(1959)의 59달러에 비하면 무려 4배 가까이, 연평균 8.6퍼센트씩 성장했다. 유명한 마지막 문장,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의 울림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대단하다. 이 책이 장제스(장개석) 시대 자유중국(대만)에서까지 번역 출간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대만 제호 <민족적잠력民族的潛力>, 1977).
한국경제의 골든타임이었던 그 10년의 키워드를 박정희는 ‘자주, 자립, 자조’로 요약한다. 장차 새마을운동의 ‘근면, 자조, 협동’으로 발전할 새싹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이미 그 전 해인 1970년, 1월 1일 신년사와 8.15 광복절 25주년 경축사에서 거듭 피력한 바 있다. 두 연설문을 책 부록에 포함시킨 이유다.
중흥의 원동력은 민족의 저력에서
10년의 성과가 말 그대로 가시적(可視的)인 만큼, 민족(=국가)의 과거사 반성의 논조는 예전의 저작들(<우리 민족의 나갈 길>, 1962; <국가와 혁명과 나>, 1963. 이상, 박정희 전집 2, 3, 6, 7권으로 재출간, 기파랑, 2017)에서만큼 신랄하지 않다. 돌아보는 민족사도 더 이상 ‘망국’이나 ‘폐습’이 아니라 ‘시련’으로 형질변경된다. 시련이라면 마땅히 보람이 따를 터. 그 보람이란 바로 ‘각성’이었다. 무엇을 위한? 답은 민족의 ‘중흥’이다. 무(無)에서 완전히 새로 일구는 것이 아니라, 빛나던 과거가 있는 자만이 가능한 ‘다시 일으킴’, 그 중흥이다. 그 원동력을 바로 민족이 본래 갖고 있던 힘인 ‘저력’에서 구하는, 어찌 보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인 시각이 책 곳곳에 넘쳐난다. 하지만 박정희에게 민족의 저력을 낙관할 근거는 충분하다. 이 민족이 ‘문화민족’이기 때문이다. 본론의 마지막인 제6장 3절의 제목을 아예 ‘문화민족의 긍지’로 삼았을 정도다.
그러나 이 낙관은 사실은 피상적인 것이다.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이 길목에 사실 대한민국은 두 가지 커다란 위기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1968년 1.21사태를 정점으로 부쩍 잦아진 북한의 도발과,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이른바 ‘제3세계’의 입김이 세지면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눈에 띄게 좁아지는 징후가 갈수록 도드라지는 것이다. 자연스레 자주국방 얘기가 나올 상황인데, 사실 이 책 몸통에는 이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연설문 두 개를 부록으로 넣어야 했던 또 하나 이유다. 1970년 신년사에서 한 번, 그해 광복절 경축사의 끝에서 두 번째 문장에서 한 번 더.
책을 낸 다음 달(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박정희 51퍼센트, 김대중 43.4퍼센트로 박정희 승. 박정희가 치른 마지막 직선제 선거였다.
박정희의 모든 저작은 세로짜기 판형인데, 이 책도 세로짜기이면서 유일하게 한자를 노출하지 않고 전부 괄호 처리했다(그 전 해인 1970년 강력한 한글전용과 한자폐지를 선언한 여파였을 법한데, 다음 책 <민족중흥의 길>[1978]에서 다시 국한혼용으로 복귀한다). 맨 앞뒤인 제1장과 7장을 제외하고 모든 장이 똑같이 3절씩, 딱딱 떨어지는 제목으로 나누이는 등 매우 공들여 편집한 모양새다.
세로쓰기와 한자 노출이 낯선 1970년대 이후 출생 세대를 위해, 책을 현대어로 풀어 쓰고 간추린 가로쓰기 <평설 민족의 저력>(남정욱 풀어씀, 박정희 전집 8, 기파랑 刊)을 동시출간했다.
박정희(1917~1979,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만든 주인공이다. 교사로 시작해 군인을 거쳐 혁명가이자 경영자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5천 년 가난의 추방과 공산주의와 대결에서의 승리를 소명으로 삼아 이를 신념과 책임의 영역에서 실천했다.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배우려 했던 최초의 역사적 반전을 기록했으며 민족 자주와 자존의 측면에서 미국과의 대립을 극한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유언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남겼다. 욕은 자기가 다 먹을 테니 후손들은 번영의 과실을 누리라고 한 말인데, 번영 과다로 역사인식이 흐려진 탓인지 칭찬은 별로 없고 비판의 목소리만 높다. 가히 평가절하의 절정. 제대로 된 인물 평가를 위해서는 국내보다 외국의 기록물을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한국사보다 세계사에서 더 비중 있게 다뤄질 공산이 크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김관용 경북도지사, 좌승희 (재)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부위원장을 맡고 전직 대통령, 대통령부인,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사회 각계 원로들과 학계, 문화계, 언론계, 재계 등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정희 전집 및 연구서 발간, 국제학술대회 등 기념사업과 특별기획전,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