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말이지만,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언젠간 다시 만나는 날이 있을 거예요.” “식상해. 난 우리가 운명이라고 생각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던 남자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질척이지 말고 쿨하게 이별해 달라는 통보 아닌 통보를 하자 유리는 그의 배신에 크나큰 슬픔에 빠지게 된다. 이별의 아픔을 딛고 홀로 떠나온 제주도 여행. 그곳에서 세상 까칠하고 냉소적인 남자 은천우를 만나게 된 유리는, 선수(?) 같은 그의 모습에 거리를 두려 하지만 가장 절실한 순간 그녀에게 큰 도움을 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와 잊지 못할 밤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쓰라린 첫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에 용기를 낼 수 없었던 유리는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이라 주장하는 천우에게 인연이 닿으면 만나게 될 거라며 그의 곁을 떠나게 되는데…….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늑대, 은천우 그런 늑대를 첫눈에 반하게 만든 여우, 송유리. 그녀는 이별의 아픔을 딛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은천우 씨,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해외 명품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고 웬만큼 돈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엄두도 내지 못할 JB호텔의 초호화 스위트룸까지……. 천우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늘어만 갔다. 아니, 그를 알아 가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솔직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정체가 뭐냐는 그녀의 당돌한 말에 천우는 매력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유리의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늑대.” 진실이건 거짓이건 지금 이 순간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이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서로를 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난 여우 하면 돼요?” 그의 머리칼을 쓸어 주며 예쁘게 휘어진 반달 모양으로 눈웃음을 그리며 유리가 새치름한 얼굴로 말했다. 상큼한 라임과도 같은 톡 쏘는 매력. 이렇게 예고치 않게 또 한 번 빠져 들어간다. 그녀의 발칙한 그 한 마디에 천우는 만족스러운지 시원한 호선을 그리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낸다. 당장이라도 덤벼들고 싶은 마음이 급급했지만 자신이 지금 하룻밤의 쾌락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아 가고 싶은 관계를 원한다는 걸 그녀가 알아줬으면 했다. “처음부터 날 홀렸으니까 여우 인정.” “푸하.” “웃기는, 매달려. 아직 다리 후들거려서 잘 걷지도 못할 거 같은데.” 조금이라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잦아들 줄 모르는 심장은 연신 거세게 방망이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 남자…… 설마 들짐승 스타일인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를 망설임. 그리고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 천우는 왜 이리도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가고 목이 쩍쩍 갈라지는 갈증이 느껴지는지. 한시라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혹시…… 난폭한 스타일은 아니죠……?” “큭.” 그녀의 뜬금포에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 ‘정말 예상이 빗나가는 여자라니까.’ 심장이 쫄깃해져 있던 천우는 그녀가 자신을 거부할까 봐 나름 안절부절못했었다. 하지만 이내 잔뜩 굳어 있던 몸이 스르르 풀어지며 동시에 커다란 웃음소리가 룸 안을 가득 메웠다. 기껏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 관계를 가질 때의 스타일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를 이토록 웃게 만들었다. “하하하.” “…….” 천우의 웃음소리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자신이 내뱉은 말임에도 이내 민망함으로 화르르 달아오르는 얼굴. 그 열기가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큭큭 웃어대는 그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자신을 놀려대며 비웃는 것으로 느껴지는 불쾌감에 앙다문 입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우리 아가.” “아가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웃음을 거두고 그녀의 허리를 쓸어 올리는 커다란 손은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향해 올라갔고, 건드릴 듯 말듯 애태우며 유리에게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당신도 날 원하는 거 같은데, 말씨름은 이쯤하고 그만 내 방으로 가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