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불량 채권 대신 받은 사람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게 짧게 깎은 머리며 온몸에 피부병 같은 발진이 돋아서 역한 냄새까지 풍기는 그런 여자였다. 그야말로 어디에도 쓸 데가 없을 것 같은 여자. 식당에 내놓고 홀 서빙조차 시킬 수 없는 몰골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속임수였다니!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흉한 몰골을 하고 꽁꽁 숨어 있던 여자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느 틈에 그의 생각 속의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펴고는 나가지 않는다. 내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질 수도 없는 여자. 그런 여자가 점점 그의 앞에서 성장한다. 아름다운 외모와 상냥한 말씨, 빛난는 열정을 가지고 점점 스타로 발돋움 해가는 그녀 룸살롱 주방 보조에서 가정 도우미, 그리고 회사원. 점점 더 큰물로 나가며 자기 모습을 갖추는 여자. 그런 여자와의 관계는 반복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 줘요?” 마음속에 가득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녀가 물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말에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잘 해준 적 있나? 착각이겠지. 난 그런 적 없는데.” 늘 말로만 무관심한 척, 모르는 척, 가끔은 겁을 주듯이 그렇게 말하는 그 역시 누구에게 제대로 손 내밀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