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취(개정판) 1부 1

· 스칼렛
5.0
1 review
Ebook
298
Pages

About this ebook

“박동희.” 치켜뜨기만 한 눈동자가 의문을 담고 동글동글하다. 순간 입 속에 또다시 군침이 돌았다. 밥 먹던 애한테 무슨 음심이냐 싶어 남자는 별거 아닌 듯 물었다. “그게 네 이름인 줄은 알겠고. 내 이름은 알아?” 갑작스런 질문이었는지, 재빨리 빨아들이는 통에 튕겨 오른 라면 국물이 동그란 콧방울에 가 묻었다. 얼굴에 튄 국물을 닦으려는 듯 젓가락을 내려놓으려 하자, 남자가 잽싸게 팔을 뻗어 잡았다. “어허.” 남자가 다른 손으로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레 닦아 내자, 눈동자가 아예 동그래진다. 입 안에 든 면발 때문인지, 이번엔 턱이 떨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주르륵 면발을 흘리면 두고두고 놀려 주려고 했는데. “모르지?”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따라잡기엔 너무 변화무쌍한지, 이전 질문을 떠올리는 얼굴이 멍해 보였다. “진짜?” 너무한다는 듯 덧붙이니, 동그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입 안에 든 것을 천천히 씹는다. 흥.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군. “강 아무개는 아냐.” 제 눈썹이 팔(八)자가 된 줄도 모르고 여전히 씹는 척을 하고 있다. 저러다 가루가 되도록 씹겠군. “가르쳐 준 적 없는데.” 좀 거들어 주자, 그제야 살길이 열린 양 표정이 밝아진다. “강전조.” 전에 들어 본 적도 없으면서 몰랐던 것이 미안했는지, 눈을 반짝이는 것이 기억해 두려고 속으로 한번 되새김하는 표정이다. 그 정도로는 안 되지. 남자는 벌리고 있던 두 다리를 단숨에 모아, 흠칫 놀라 빠지려는 가는 다리를 가두었다. 그리고 동그란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강하게 속삭였다. “잊지 마.” 굳게 갇힌 팔 안에서 몸을 빼려 애쓰며 뱅뱅 돌았지만 끝내 실패. 결국에는 몸을 움츠리고 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내는 다 늑대라는 말을 이 아이한테 해 준 사람이 있었을까? 아이의 좌절과 상반되게 전조는 흡족한 목 울림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비명을 질러야지, 이럴 땐.” 놀란 숨을 들이마시느라 흰 블라우스 아래의 작은 가슴이 들썩인다. 대책 없을 만큼 순진하고 물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 틈새를 비집고 비열한 주인 남자가 무슨 짓을 더 하고 싶은지 이 아이는 천만분의 일이나 짐작할까? 솔직히 ‘주인’이라는 단어도 적당하진 않지. ‘주인집 남자’ 정도면 모를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아이의 절대적인 주인이 되고 싶었다. 애완동물 따위의 개념이 아니었다. 자신이 이 아이의 모든 것이 되었으면 했다. 자기 스스로도 왜 이 아이만 보면 이렇게 이성이나 여타의 지성은 모두 저버린 채 그저 맹목적인 감정만이 솟구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에 벌어질 상황이라든가, 혹은 이 아이가 겪게 될 혼란들은 이미 그의 염두에 없었다. 그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고 멈출 수도 없었다. 아이가 고개를 깊게 수그리며 손목을 잡아 빼려 했지만 놔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잠시 마주쳤던 시선에 고였던 충격과 두려움을 목도하고도 뻔뻔스런 주인은, 여전히 오금 뒤를 잡고 있던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다치게 할 리가. 하지만 그런 그의 의도를 모르는 아이는 계속 떨었고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자잘한 주름의 안쪽에서 접히는 피부 특유의 촉촉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손가락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손바닥을 펴 밀어붙였다. 그러자 팔딱거리는 맥박이 전해졌다. 심장에서 내려왔을 그 생명의 기운이 견딜 수 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결코 놓지 못할 것이다. 순간적인 음심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이, 태초부터 결정된 운명까지 가닿은 인연인지 그조차도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인 박동희를 붙든 그의 안에서 욕심은 그렇게 커져만 갔다.

Ratings and reviews

5.0
1 review

About the author

정유석 chega_suga@hotmail.com

Rate this ebook

Tell us what you think.

Reading information

Smartphones and tablets
Install the Google Play Books app for Android and iPad/iPhone. It syncs automatically with your account and allows you to read online or offline wherever you are.
Laptops and computers
You can listen to audiobooks purchased on Google Play using your computer's web browser.
eReaders and other devices
To read on e-ink devices like Kobo eReaders, you'll need to download a file and transfer it to your device. Follow the detailed Help Center instructions to transfer the files to supported eRea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