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 치켜뜨기만 한 눈동자가 의문을 담고 동글동글하다. 순간 입 속에 또다시 군침이 돌았다. 밥 먹던 애한테 무슨 음심이냐 싶어 남자는 별거 아닌 듯 물었다. “그게 네 이름인 줄은 알겠고. 내 이름은 알아?” 갑작스런 질문이었는지, 재빨리 빨아들이는 통에 튕겨 오른 라면 국물이 동그란 콧방울에 가 묻었다. 얼굴에 튄 국물을 닦으려는 듯 젓가락을 내려놓으려 하자, 남자가 잽싸게 팔을 뻗어 잡았다. “어허.” 남자가 다른 손으로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레 닦아 내자, 눈동자가 아예 동그래진다. 입 안에 든 면발 때문인지, 이번엔 턱이 떨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주르륵 면발을 흘리면 두고두고 놀려 주려고 했는데. “모르지?” 지금 흘러가는 상황을 따라잡기엔 너무 변화무쌍한지, 이전 질문을 떠올리는 얼굴이 멍해 보였다. “진짜?” 너무한다는 듯 덧붙이니, 동그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입 안에 든 것을 천천히 씹는다. 흥.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군. “강 아무개는 아냐.” 제 눈썹이 팔(八)자가 된 줄도 모르고 여전히 씹는 척을 하고 있다. 저러다 가루가 되도록 씹겠군. “가르쳐 준 적 없는데.” 좀 거들어 주자, 그제야 살길이 열린 양 표정이 밝아진다. “강전조.” 전에 들어 본 적도 없으면서 몰랐던 것이 미안했는지, 눈을 반짝이는 것이 기억해 두려고 속으로 한번 되새김하는 표정이다. 그 정도로는 안 되지. 남자는 벌리고 있던 두 다리를 단숨에 모아, 흠칫 놀라 빠지려는 가는 다리를 가두었다. 그리고 동그란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강하게 속삭였다. “잊지 마.” 굳게 갇힌 팔 안에서 몸을 빼려 애쓰며 뱅뱅 돌았지만 끝내 실패. 결국에는 몸을 움츠리고 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내는 다 늑대라는 말을 이 아이한테 해 준 사람이 있었을까? 아이의 좌절과 상반되게 전조는 흡족한 목 울림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비명을 질러야지, 이럴 땐.” 놀란 숨을 들이마시느라 흰 블라우스 아래의 작은 가슴이 들썩인다. 대책 없을 만큼 순진하고 물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 틈새를 비집고 비열한 주인 남자가 무슨 짓을 더 하고 싶은지 이 아이는 천만분의 일이나 짐작할까? 솔직히 ‘주인’이라는 단어도 적당하진 않지. ‘주인집 남자’ 정도면 모를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아이의 절대적인 주인이 되고 싶었다. 애완동물 따위의 개념이 아니었다. 자신이 이 아이의 모든 것이 되었으면 했다. 자기 스스로도 왜 이 아이만 보면 이렇게 이성이나 여타의 지성은 모두 저버린 채 그저 맹목적인 감정만이 솟구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에 벌어질 상황이라든가, 혹은 이 아이가 겪게 될 혼란들은 이미 그의 염두에 없었다. 그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고 멈출 수도 없었다. 아이가 고개를 깊게 수그리며 손목을 잡아 빼려 했지만 놔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잠시 마주쳤던 시선에 고였던 충격과 두려움을 목도하고도 뻔뻔스런 주인은, 여전히 오금 뒤를 잡고 있던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다치게 할 리가. 하지만 그런 그의 의도를 모르는 아이는 계속 떨었고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자잘한 주름의 안쪽에서 접히는 피부 특유의 촉촉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손가락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손바닥을 펴 밀어붙였다. 그러자 팔딱거리는 맥박이 전해졌다. 심장에서 내려왔을 그 생명의 기운이 견딜 수 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결코 놓지 못할 것이다. 순간적인 음심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이, 태초부터 결정된 운명까지 가닿은 인연인지 그조차도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인 박동희를 붙든 그의 안에서 욕심은 그렇게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