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다가온 남자는 몸을 낮추고 논바닥에 처박혀 흙탕물 범벅이 된 하리를 고요히 바라봤다.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논바닥만 노려보는 하리의 턱을 잡아 천천히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눈 떠요." 고집스레 감고 있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가고 말간 눈동자가 오롯이 자신만 보자, 그제야 만족한 듯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망가면 재미없다는 내 말이 우스웠나 봅니다." 다정한 말투와 근사한 미소 위로 서늘한 눈빛이 왜 제 영역에서 벗어났냐며, 하리를 압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