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일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 따위,
그저 자기 기만적인 착각일 뿐인 사랑 따위에
왜들 그렇게 목숨을 걸지 못해 안달들인지.
“우연은 절대로 운명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스웠다.
자신과 똑같이 말하는 저 여자의 입술은
어째서 틀어막고 싶어진 건지.
“만약 우리가 다시 우연히 만난다면, 그땐 인정할 건가?”
“뭐를요?”
“우리가 운명이란 것.”
우아하지만 차갑고,
알고 싶지만 결코 알 수 없는 여자.
그를 이렇게 우습게 만들면서도
지독한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 최서린.
그의 밤과 꿈을 지배하던 여자가 나타났다. 운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