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사랑했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인생도 어두워졌다. 되찾으리라. 그녀도. 그의 멈춰 버린 심장박동도. *** 강재는 엄지로 그녀의 입술을 꾹 문질러 닦았다. 제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이, 여전히 사랑스럽다. 은서는 그대로였다. 저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때와 작은 것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부드럽게 밀착되는 입술의 촉감도, 말랑하면서도 촉촉하게 감기는 혀의 달달함도. 그러나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건 눈빛이다. 저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눈동자에서조차 묻어나는 그리움. 그녀가 남기고 간 거짓말들이 반복해서 그의 뇌를 스쳐 간다. 그것만으로도 다시 분노의 탈을 쓴 질투가 솟구친다. 어디 도망쳐 봐. 끝까지 찾아낼 테니까. 그는 침실 안 욕실로 들어서려다 문득 문을 돌아보았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도.”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끝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들켰어, 너. 남김없이 전부 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은 머리로 잊고, 가슴으로 누르고, 말로 숨겨도 눈빛만은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좋아. 속아 주지, 정은서. 네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알 때까지 속아 줄 테니, 어디 한번 날 갖고 놀아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