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상〉
“놓아주면, 왜. 죽기라도 하려고.” 모든 것을 다 잃은 그녀와 재회했다. 호텔 라운지가 아닌 병원 옥상에서. “모르는 척, 마치 실수인 척. 나 잡아요.” “못해요. 자신 없어요.” “그럼 그냥 나한테 발목 잡힌 걸로 해.” 죄인처럼 결혼은 못 하겠다는 너를 내 곁으로 데려왔지만, 결국 은재는 모든 기억을 스스로 지웠다. *** “한 반년 됐나. 너무 오랜만이네.”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죄책감으로 말라 가는 너를 볼 수 없었기에. “도저히 포기가 안 돼서.” “전에 제 뜻은 다 전달한 것 같은데요.” 은재는 무척 단호했다. 그녀의 상태는 여전했고, 저를 기억하지 못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알아. 그래서 다시 시작하려고 왔어. 고은재, 당신이랑.” 너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에게 추억이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가슴에 와닿았다. 추억이라도 곱씹으며 버티려고 했으나 내겐 그것조차 없었으므로. “기억 못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 줄 거니까.” 그녀를 바라보는 무열의 눈동자에 애정이 듬뿍 담겼다. “은재야, 우리 연애부터 하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 네가 나를 기억 못 해도 상관없다. 나는 묵묵히 너의 기억 끝에서 기다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