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상〉
“약혼자 행세라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준원이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너도 전에 나 이용했으니까, 나도 한번은 그래도 되잖아. 그래야 공평한 거 아니야?” 연수는 망설이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내뱉었다. 그의 약혼자라는 소문이 돌아 얼마나 많은 눈총을 받았던가. 서로의 자식을 결혼시키자는 시답잖은 술자리 약속의 주인공이 하필 ‘그’ 한준원이었던 게 문제였을까. 한준원. 한본 은행의 유일한 상속자이자 평생을 같이 입방아에 오르내린, 데면데면한 소꿉친구. 모두가 그와 엮이고 싶어 한다고 해도 딱 한 사람, 그녀만은 예외였다. 남몰래 품어온 교사의 꿈. 이번 임용에 붙어 꿈을 이루기만 한다면 집안의 말도 안 되는 압박에서 등을 돌려 자유롭게 살 작정이었다. 그러니 아주 잠깐, 그 짧은 시간만 거짓 약혼자 행세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준원의 호흡에 연수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서로의 호흡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가깝게 붙어 있었던 적은. 조금만 움직여도 그의 몸이 닿을 것 같아 연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내가 조금이라도 의식이 되기는 하나 보네.” 긴장하는 연수를 보며 그가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내가 원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