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초판본)(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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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독립운동’ 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생각하게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하면 ‘백범 김구’를 떠올린다. 그만큼 김구는 독립운동을 초지일관 전개하고 주도하였으며, 그 중심 기관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1920년대 후반 이후 김구와 때로는 경쟁하면서, 때로는 협조하면서 독립운동의 한 축을 형성했던 인물들을 통해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되어왔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던 김구는 어린 자식들에게 유서를 남기고자 장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백범일지》의 시작이다. 일종의 유서였던 《백범일지》 〈상권〉은 1929년에 완성되었고, 이어 1942년 《백범일지》 〈하권〉을 완성했으며, 해방된 후 1947년 국사원에서 단행본 형태로 처음으로 《백범일지》가 출간되었다. 국사원본 《백범일지》는 어려운 국한문 혼용의 친필본 원고를 한글 문체로 풀어 쓴 최초의 한글 번역본이다.

O avtorju

저자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김창수(金昌洙)이다. 서너 살 무렵 심한 천연두를 앓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통감》과 《사략》, 병서를 즐겨 읽었다. 15세에 정문재의 서당에서 본격적으로 한학 수업을 받고, 조선 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학과 위정척사사상, 의병운동 등에 참여했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나라를 살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교육운동과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1911년 안악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이때 독립에 대한 바람과 결심을 담아 호를 ‘백범(白凡)’으로 했다. 이후 몇 번의 감형을 통해 1915년 석방되었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뒤,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취임하였고 이후 임시정부 요직을 거치며 항일 투쟁에 매진했다. 1945년 광복 후, 임시정부 국무위원 일동과 함께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힘썼고, 남북협상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쏜 총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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