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내가 순진하지는 않아서.” 빌린 돈을 갚겠다는 약속에 도혁이 헛웃음을 날렸다. 부모에게 버려진 자신을 지켜 준 유일한 남자, 그가 너무 변했다. “돈 대신 줄 게 있을 텐데. 너처럼 가진 게 없는 여자라도." 침대에 걸터앉은 도혁은 다리를 넓게 벌렸다. 위협적으로 뻗은 몸을 과시하듯 손을 뒤로 짚고 상체를 천천히 기울였다. “대표님, 설마….” 가족보다 따스하게 자신을 돌봐 주던 남자가 제 몸뚱이를 원한다는 뉘앙스에 숨이 막혔다. “너도 이 새끼 저 새끼들 앞에서 벗어젖히는 것보단 낫잖아. 깔끔하고.” 마지막 남은 구원의 손길은 세아를 나락으로 잡아끌었다. "머리 잘 굴려 봐. 누구한테 대 주는 쪽이 나은지." 검은 눈동자에 나른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자그마치 12년. 세아가 제 발로 자신을 찾아오도록 공들인 세월이 이제 막 싹을 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