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세계적인 소설가인 톨스토이는 톨스토이 가문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16세 때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갖지 못하여 중도에 자퇴하고, 영지로 돌아왔다. 1851년 형의 권유로 군에 입대했고, 복무 중 틈틈이 글을 쓰며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완성했다. 제대 후 1857년부터 61년까지 유럽을 두 차례 여행하며 교육이론을 연구했다. 여행 후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농민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열었다. 1862년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교육 활동을 그만두고, 가정생활에 전념했다. 이 기간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출간했다. 톨스토이가 7년에 걸쳐 쓴 『전쟁과 평화』는 세계문학에서 손꼽히는 대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안나 카레니나』 집필을 마칠 무렵 삶의 목적에 관한 의문으로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 1879년 정신적 위기는 절정에 이르렀고, 톨스토이는 자살을 생각했다. 방황하던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야말로 삶의 의미에 관한 해답을 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찾은 해답과 확신을 『고백록』에 담았다. 톨스토이는 새로운 확신에 기초해 그리스도교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게 되었다. 그는 정신적 위기를 체험한 뒤 도덕적인 목적을 지닌 이야기들을 많이 썼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로이체르 소나타』 등을 집필했으며, 71세에 쓴 『부활』은 그가 회심한 이후에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회심 이후 자신의 신념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막내딸만을 데리고 신을 섬기며 조용히 살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아 나섰으나 1910년 11월 20일 아스타포보의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죽었다.
역자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Biblica Academia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깊이 있게 공부하였다. 대학 시절에 역사를 비롯하여 서양 철학과 독문학을 두루 공부하였다. 그는 신학과 사회과학을 좀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독일 보쿰Bochum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또한 성경과 고전어 연구 기관인 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익히고 고대의 라틴 원전과 그리스어 원전을 공부하였다. 역자는 전문 번역가로 30여년 간 신학과 인문학 도서를 많이 번역하였다. 역서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 역사』, 제임스 던의 『바울 신학』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 번역한 책으로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어 원전 번역한 책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