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할 만한 질문이 아닌데요.”
“어디의 누군데? 괜찮은 놈인지 내가 알 수도 있잖아.”
알아서 뭐 하려고? 평가라도 내려 주려고?
순식간에 시연의 속이 부글거렸다.
“그때도 내 환경과 비슷한 사람 만나려고 했었잖아. 어디의 누구인지 말해도 모를 거야. 아주 평범할 테니까.”
“갑자기 왜 반말을 하지?”
“상사가 아닌 친구로 물은 질문이니까.”
“아하, 우리가 친구였었나?”
은혁에게서 묘한 어투가 흘러나왔다.
‘친구’라고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관계를 꼬집는 것 같아서 시연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무시했다.
“절정. 그 영화 봤어?”
함께 보기로 했던 영화.
설렘이 그득하게 차올라 기대감으로 몇 날 밤을 지새우게 만들던 첫 데이트.
“아니. 못 봤어.”
그를 회피할 핑곗거리로 찾은 게 고작 머그잔이었다.
이걸 들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타 오면 알아서 가고 없겠지,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삽시간에 무너지듯 사라졌다.
바짝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시연의 턱을 쥐고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난 봤어.”
그가 본 것이 실은 영화가 아니라 그날 교정에서 느꼈던 풋풋함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또다시 시연의 등줄기로 관능이 훑고 지나갔다.
“그래서?”
“그렇다고.”
은혁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속에 콕 박혔다.
<출간작>
가시독. 오션. 월야. 홍역, 누구나 한번은 치러야 할. 애오락. 히든(Hidden). 홀인. 중독. 야누스. 어느 날,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