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현. 우리 계약 끝났고, 이제 더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어." 스산하게 가라앉던 태현의 눈동자가 윤아를 향했다. "누구 맘대로?" 중압감있게 떨어지는 목소리가 차분히 묻는다. "뭐…?" "누구 맘대로 계약이 끝나? 난 허락한 적 없는데?" 당당하고 담담한 그의 말에 윤아는 하얗게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정신을 꽉 부여잡았다. "…네가 네 입으로 인정했잖아. 약혼…했다고." "그랬지." 그는 시크하게 대답하며 뮤지컬 티켓을 네 등분으로 찢어버렸다. "그래서?" 까닥, 기울어진 고개가 진심으로 궁금하단 듯 되묻는다. 그래서라니?! 윤아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숨만 쌕쌕 몰아쉬었다. 그런 윤아를 잡아 삼킬 듯 응시하며 그는 아일랜드 식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윤아야. 기억 안 나? 우리 계약종료 조건은, 네가 젖지 않을 때라고.” 윤아의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듯 친절하게 되짚어주는 그의 목소리는 느른했다. 물론 직진하듯 쏘아지는 눈빛은 그와 정반대의 것이었지만. "…그, 그건 그냥 했던 말…아니었어…그, 그런 게 어딨어….” 윤아가 더듬거리며 항의했다. 그런 그녀를 고요히 들여다보던 태현이 다시 되물었다. "김윤아. 내 입에서 나가는 말 한마디 때문에 수백, 수천억이 왔다 갔다 해. 그런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있을 것 같아?" 창백하게 핏기 가신 윤아의 입술이 꽉 다물렸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박거리는 윤아의 귓가로 리듬감까지 타기 시작한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벗어서 증명해봐. 하나도 젖지 않았으면 그대로 계약 종료시켜줄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달싹이던 그녀의 입술이 김빠진 한숨만을 내뱉고 처량맞게 가라앉았다. 완전히 그의 수에 말려버렸다. "벗겨줄까? 윤아야?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