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그때 유은의 무릎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참담한 기분을 느낄 틈도 없었다. 지금까지 유은이 했던 모든 노력을 이렇게 물거품이 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정말 악착같이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너는 가진 것도 하나 없으면서 참 열심히 살아. 그런다고 네가 나처럼 될 일도 없는데 말이야. 그래봤자 가난뱅이 거지 주제에.’ 다른 친구들이 공부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했고, 다른 친구들이 잠에 들었을 시간에 유은은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가는 유은을 향해 비소를 던지며 세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박도한의 상대가 세빈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분노가 치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유은은 박도한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종현을 찾아온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물론 그동안 얼마나 제가…. 힘들게 살았는지…. 절대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지금까지 했던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도와 달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가 가진 자료 모두 드릴게요. 제가 박종현 대표님을 서포트 할게요. 박종현 대표님께서 혜윰 그룹의 회장님이 될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착각하지 마. 나는 너 따위의 서포트 없이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어.” “아….” “박도한보다 내가 훨씬 능력이 좋거든. 그런 거 말고. 현실적으로 네가 줄 수 있는 걸 말해.” “그게…. 그게 무슨.”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올려보는 유은의 턱 끝을 붙잡은 종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를테면 너, 라거나.” 종현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거 좋네. 너.” “…….” “너 정도는 나한테 던져줘야 구미가 좀 당길 것 같긴 한데 말이야.” 언젠가 가라앉을 배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내민 손을 붙잡은 내 잘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