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라고 불리는 대진 그룹의 차남 하태주. 호텔 경영을 맡은 그의 눈 밖에 나면 누구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무엇이든 가차 없이 잘라내는 그의 곁에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을 붙어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살아있는 CCTV 이사림.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기 시작했지만 잘라내지 않았다. 아니, 잘라낼 수 없었다. “네가 섬기는 주인은 누구야? 넌 누구의 개새끼냐. 이사림.” 여자로 태어났으나 사춘기 시절부터 남자로 살아야 했던 이사림. 지옥에서 구원해준 은인의 지시로 그림자처럼 태주의 곁에 붙어 있게 되었다. 은혜를 갚기보다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습관처럼 머물렀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자신을 보는 하태주의 눈빛이 묘해졌다. “먹이를 주는 쪽이겠죠.” “개새끼라는 건 인정하는 모양이네.” “사람 새끼가 이렇게 살진 않겠죠.” 자신을 향한 평가가 지독하다. 그런데도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난 어때. 최고의 먹잇감 아닌가?” 무슨 의미일까. 야릇하게 말려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에 사림의 심장이 조여온다. “날 먹어. 이사림.” “그런 취향 아닙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선을 긋는 사림을 태주가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런 취향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