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예술 세계에서는 다른 시공간에 배치되고 정돈된 사물들과 주체들을, 젊음과 늙음, 미와 추, 선과 악, 삶과 죽음이라는 장(場)에 나란히 배열시킨다. 그리고 합(合)을 선명하게 도출해 내기 위해서 젊음과 늙음, 미와 추, 선과 악, 삶과 죽음을 대조시킨다. <홀스토메르>는 톨스토이의 여느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조의 기법’ 위에 구축된다. ‘젊은 홀스토메르’와 ‘늙은 홀스토메르’의 대조와 더불어, ‘늙은 홀스토메르’와 ‘젊고 생기발랄하고 건강한 말 떼’의 대조도 나타난다. 이러한 대조는 도덕성의 문제, 선악의 문제, 기생충 같은 삶과 노동하는 삶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면서 후기 톨스토이의 관념(идеа)과 이상(идеал), 나아가서는 그의 사상(идеология)까지도 표현한다.
온몸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내며, ‘붉은 분노’를 품은 채 역사를 밀고 나간 ‘한 인간의 실존적 아픔과 고통’을 형상화한 중편소설 <무엇 때문에?>의 집필은 1906년 1월부터 4월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1906년 모스크바에서 발간된 저서 ≪독서회≫에 처음으로 수록되었다. 이 작품의 주제와 대부분의 줄거리는 막시모프(С. В. Максимов)의 ≪시베리아와 강제 노동≫에서 취했다. 막시모프의 이 작품은 톨스토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1906년 2월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한 스타호비치(С. А. Стахович)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막시모프의 유명한 작품 ≪시베리아와 강제 노동≫을 읽어보았소? 강제 노동과 유형(流刑)의 역사적 묘사가 눈에 띄오. 한번 읽어보시오.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행동하는지, 짐승들도 정부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는 없을 거요.”
유형을 당해 강제 노동에 처해진 폴란드인 미구르스키와 그의 아내 알비나는 실재했던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들 생애의 모든 비극적 이야기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이들의 이야기에다 인간이 처한 상황과 결부된 심리적 묘사를 도입한다. 그래서 이들은 민감한 영혼과 성정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톨스토이는 국가(기구)의 억압과 강압의 희생양인 주인공들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그려낼 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민족 해방운동에 대한 공감을 표출하고 있다. 저자는 ‘폴란드(인)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사료를 정밀하게 탐독했다. 특히 그는 1830∼1831년에 일어났던 폴란드 봉기와 관련된 문헌을 빌려서 연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품 곳곳에 산재해 있는 폴란드 봉기와 관련된 다섯 문장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책을 정독해야만 했다.”
주체와 사회 사이, 개인과 국가 사이의 틈새를 여행하게 하는 <무엇 때문에?>에 나타난 19세기 폴란드인의 아픔과 고통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21세기의 현실에서 자아를 웅크린 채로 살아가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아픔과 고통으로 치환되면서 ‘새로운 확장된 의미’를 창출한다. 우리는 이러한 아픔과 고통을 통해 ‘자아의 방기’로 나아가고 있는지, ‘자아의 단련’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
지금 이 시대의 사회적 직업이나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나 물질적 재화 획득 차원을 넘어서 자아를 표출하고 자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기에, 사회적 직업이나 노동이 곧 ‘바로 그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간의 자기 창출(human self-creation) 행위를 원하는 대로, 안정적으로 할 수 없는 실존적 상황에 처한 미구르스키를 보면서 그의 아픔과 고통, 불안과 절망을 실로 절감하게 된다. 아울러 ‘위험을 관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픔과 고통, 불안과 절망도 ‘겹쳐서’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