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족과 여러 종족이 혼재하는 바탄국, 요정족의 후손인 소화는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지켜줄 힘이 없는 남자 리렌을 구하기 위해 오년에 한 번 발생하는 금환일식을 이용해, 렌센족의 영역인 요루국의 경계를 넘는다.
금지된 성역인 그 곳에서, 그녀는 리렌의 이복형인 렌슈와 맞닥뜨리고 그 악연은 고통의 서막이 된다.
소화는 결국 잔혹하게 상처 입히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초월적인 존재 렌슈의 포로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 * *
그러나 이 요망한 계집이 원하는 것은, 원한다고 감히 혀를 놀리는 것들은 늘 제 가슴을 후벼 파고 찢어발겼다. 심장을 천천히 좀 먹어 들어가고 감염시켜 결국 부패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毒)처럼.
계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턱이 으스러지게 잡혀 입을 열 수가 없는 것인지,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인지는 몰랐다.
“후사에 대한 욕심은 나 역시도 없었다.”
렌슈는 턱을 움켜잡은 손을 거뒀다. 계집은 천천히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슴처럼 맑고 커다란 눈이 눈물에 흠뻑 젖어 흐릿해져 있었다.
“하지만 네 말을 들으니…. 갑자기 욕심이 일어나는군.”
“…….”
“넌 슈안의 동생들을 계속 낳아야 할 거야. 내가 원하지 않을 때까지.”
“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닥쳐. 내가 나갈 때까지.”
그의 금안이 차가운 격노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 이상 네 가증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이 손이 목을 졸라버릴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