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의 작센 지방의 작은 마을인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53년 나움부르크에 있는 김나지움에 다녔는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후 국제적으로 유명한 슐포르타에 입학해 1858년부터 1864년까지 학업을 계속했다. 시를 짓고 음악을 작곡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특히 고전어와 독일문학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1864년 졸업 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어머니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 지나 신학 공부를 중단했다. 그 후 리츨 교수 밑에서 고전문헌학을 배웠고, 이듬해에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1865년에 그는 우연히 발견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한동안 그의 염세주의 철학에 매료되었다. 이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 지평을 넓혔고, 나중의 ≪비극의 탄생≫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1869년, 리츨의 도움으로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에 위촉되었다. 이해에 트립셴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와 만나 긴밀한 우정을 나누었다.
1872년에 첫 저서인 ≪비극의 탄생≫을 썼다.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몰락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니체의 초기 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데, 당시의 고전문헌학자들은 혹평을 했다.
1873년과 1876년 사이에는 ≪반시대적 고찰≫을 썼다. 그의 시대에 대한 총체적 비판을 담고 있다. 1876년에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진부한 공연과 바그너에 대한 숭배 분위기에 혐오감을 느끼고 실망한 후 결국 바그너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1878년 아포리즘으로 구성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판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어 바젤대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 후 요양하면서 저술에 전념하는데, 1881년 ≪아침놀≫, 1882년 ≪즐거운 학문≫, 1883∼1885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6년 ≪선악의 저편≫, 1887년 ≪도덕의 계보≫를 출판하고, 1888년 ≪바그너의 경우≫, ≪안티크리스트≫를 출판하고,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등을 저술했다. 1889년 1월 3일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기절한 후 10여 년간 정신 질환을 앓다가 1900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