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간절한 게 없어. 그렇지요, 공주?”
“……간절하게 만드는 게 없으니까요.”
왕으로 인해 어미와 아비 모두를 빼앗기고, 제 자신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그날. 야만족이 천서국으로 들이닥쳐 모든 것을 장악해버렸다.
불처럼 붉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 홍오의 왕 샤.
절체절명의 순간 제 앞에 나타난 그는, 서해에게 있어서 신과도 같았다.
“부친은 전쟁터에서 죽고, 모친은 왕의 여자로 생을 마감하고, 불쌍한 그대를 양부가 탐하려는데, 그런데도 신을 믿습니까?”
“……바로 이곳에서 피접 가신 왕께서 저를 안으려 했어요. 신 같은 건 없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성문이 열리고 궁이 장악됐다는 말에 서둘러 피난길에 올라야 했죠. 그때 하늘신께서 저를 굽어살피신다 여겼어요.”
“그렇다면 공주께 신은 하늘신이 아니라, 내가 아닙니까.”
팽유정
팽彭씨 가문의 둘째
▣ 출간작
도둑의 밤
칼날의 밤
나락의 밤
폭월의 밤
배덕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