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온 최정례의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속 54편의 시들은 기억의 편린과 편린, 그 겹침의 통증이 전작보다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 시집이다. 시인은 여전히, 기억을 통한 현실의 재구성과 거리두기의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훨씬 더 밀도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은 없는 것을 현재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최정례는 이질적 시간의 뒤섞임 속에 현실이지만 꿈같은 장면 안에서 어리둥절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돌연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어리둥절”은 시간의 교착상태에서 표출되는 주체의 당혹스러움과 아이러니를 말하면서 동시에 짐작할 수도 없었던 간절한 목소리를 출연시킨다. 이 시집의 시들이 이제까지의 그의 시와 다른 형식을 얻게 되는 것도 이 점이다. 간절함이 “꽃핀 저쪽”을 욕망하는 순간 어느새 그가 욕망하던 미래가 “사슴뿔을 뒤집어쓰고” 지금 여기에 도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