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키우는 일이 내게는 소금땅에 물 대는 일처럼 가망 없게 느껴졌는데,
엄마에게 네가 없었다면
싹이 틀 수 있는 땅 한 뼘 얻으려고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는 농부의
사랑을 알 수 있었겠느냐”
자폐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이야기
나와 눈을 맞추지 않는 아이, 나를 엄마라 불러 주지 않는 아이…
지난 4월 ‘장애인을 날’을 맞아 여러 행사가 있었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0명 중 5명이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더 이상 우리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중얼중얼 혼잣말하다가 손뼉을 치거나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다른 사람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이 세상과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 버스나 지하철에서, 혹은 길을 가다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조마조마하고 일면 두렵기까지 한 그가 내 가족 중 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 같은 모습은 ‘자폐’라는 장애를 지닌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성향 중 하나다. 자폐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가 장애아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아이와 함께 장애를 겪는다. 아이가 평생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낙심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러한 마음 상태는 이내 육체 및 심리적 피폐로 이어지면서, 숱한 갈등과 부담, 고통을 이기지 못해 가정 해체, 경제적 파산, 장애 자녀 유기, 결국에는 삶을 포기하는 극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내 사랑, 내 아픔, 내 아들 요섭이
저자는 아들 요섭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선생님의 율동도 따라하지 않으며, 하루 종일 구석에만 있는 등 자폐 성향을 보였다. 모든 평온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대학병원에서는 원인도 알 수 없다 했다. 이후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의 치료와 교육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수월하게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세상의 차가운 현실과 대면해야 했다. 아들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담임선생님, 일반 아동을 위한 교실을 늘리기 위해 도움반 교실을 양보해 달라는 학교측, 속만 탈 거라며 어머니회에는 참여할 필요 없다는 배려 아닌 배려….
눈물 머금은 세월 속에서 삭혀 온 말
몸은 계속 커가는데 생각은 네댓 살에 머물러 있는 아들과의 대화 자체는 매일 전쟁이었고, 엄마는 매번 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큰 소리로 중얼거리는 아들이 창피해 아들을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드러누워 악을 쓰고 버둥거려 중도에 끌고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하루 종일 시달린 날은 정말이지 가출이라도 하고 싶지만, 아무도 아이를 반겨 주지 않고 좋아해 주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애증의 감정에 힘겨워하는 엄마…. 책에는 날마다 자기 안의 어둠과 마주해야 하는 이 같은 심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점, 육체적인 고단함과 생활의 쪼들림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핏줄로 이어져 있는 가족임에도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며 공감대를 공유해 갈 수 없는 점이라 저자는 고백한다. 이 절벽과 같은 상황 앞에서 저자는 여러 질문과 마주하게 되면서 차츰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나가기 시작한다.
‘심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깔보고 경멸하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왜 사람들은 장애를 경멸하고 두려워할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유한함, 연약함, 한계를 인정하고 삶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웃과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 간다.
늘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엄마들에게
‘다름’과 ‘더불어 삶’ 그리고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벌레의 삶’에서는 자폐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애벌레에서 고치로’에서는 가족과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마지막 ‘고치에서 나비로’에서는 가족을 넘어 이웃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가 자폐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의 가슴에는 아직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 통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들은 어느덧 어엿한 청년이 되어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혼자 갈 수 있게 되었고, 수능은 못 보았지만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나 또는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되었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장애아 엄마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라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그런 식으로 아픔을 떠안기지 않을 터이므로, 우리가 겪는 많은 아픔 가운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많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장애아 부모들이 빠질 수 있는 감정적 오류들, 경계해야 할 마음가짐도 짚어 준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의 치료와 교육은 당연시되지만 그 부모에 대한 주위의 관심과 보살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 동일한 아픔을 지닌 엄마들은 물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누추함만 두드러져 보이고 집안일의 소중함은 느낄 수 없어 숨 쉴 구멍을 찾아 헤매는 엄마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 자녀를 향한 엄마의 믿음과 소망은 세상 그 무엇보다 찬란한 빛이자 짜디짠 소금이기에 오늘도 묵묵히 걷는 그 길에 시원한 해갈을 줄 것이다.
최유진
아름다운 것과 참된 것을 늘 열망하며 살아간다.
꽃을 좋아하고, 음악과 친구를 좋아하고, 숲과 바다를 좋아하고, 혼자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반평생 동안 책을 만들며 살아왔다.
웃음과 눈물과 노래는 하늘에서 내려 준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감사하고 감탄할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