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보다 내가 더 싫어.” “네?” “밉다면서 아저씨를 좋아하는 내가 더 싫다고! 싫어!” “어…….” “이씨! 내가 아저씨 좋아한다고!” 그가 좋다. 아니, 밉다. 그런데도 싫어할 수가 없다. 온실 속의 꽃처럼, 공주처럼 자라 왔던 미연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내 편’이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박하고 홀대하는 불여우에게 홀려 자신을 버리자, 세상 모든 것이 다 귀찮고 허무하기만 했다. 그런 그녀가 그나마 의지하고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남자, 강태윤. 하지만, 그는 그런 그녀의 믿음을 배신하고 자신이 받아야 할 아버지의 재산을 몽땅 차지해 버렸다, 그녀의 법정 후견이라는 이름으로. 차라리 대놓고 유산을 노리던 그 불여우 새엄마가 나을 정도로, 배신의 상처는 커다랗기만 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미연은 태윤을 미워할 수 없는 걸까? 그리고…… 그의 정체는 과연 뭘까? [본문 내용 중에서] “우리 아빠랑 무슨 사이야?” “……네?” 반쯤 먹은 밥을 깨작거리던 미연이 결심한 얼굴로 젓가락을 놓고 식탁에 양팔을 올렸다. “우리 아빠가 숨겨 놓은 아들이야?” “아닙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질 것 같았지만, 태윤은 점잖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부정했다. 미연이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우리 아빠가 아저씨한테 유산을 왜 남긴 거야?” “…….” “아빠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있을 거잖아. 유산을 나에게 남겼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야. 액수도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아빠가 당신 피붙이도 아닌 남에게 그 많은 재산을 남긴 이유가 궁금해.” 어느새 수저를 놓은 그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의 미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젠가 얘기해도 얘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실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닌 이유. 하지만 꼭 지켰으면 했던 서 회장의 마음을 알기에 되도록 그녀의 보호자 역할이 끝나는 날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저리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태윤은 마음이 요동쳤다. 그녀가 더는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서 회장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조만간 때가 되면 다 설명 드리겠습니다.” “하아…….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던 미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좋아. 알았어. 그럼 그거만 말해 봐.” “뭘……?” “정말 우리 아빠랑 진짜 무슨 관계야? 혹시 내 오빠라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