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동은 가상의 동네이지만 비교적 구체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대략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일대로, 실제로 작가는 삼십대 중반의 6년을 이 일대에서 살았다. 작가는 현석동에 살 때 집에서 밤섬을 자주 내려다보다가 문헌 자료를 뒤적이면서 한강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수첩을 들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표지판이나 표석을 들여다보았으며, 민담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샅샅이 훑으며 스마트폰 앱을 켜고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작가가 꿈꾸고 상상하는 현수동은 먼저 역사가 있는 곳이다. 허허벌판 위에 지은 신도시나 과거와 현재가 으르렁거리며 대치하는 곳이 아닌, 오래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괜찮게 살았고, 얼마 전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괜찮게 살았으며, 그래서 나도 그곳에서 괜찮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안전하고 희망적인 느낌을 주는 곳.
작가가 현수동에서 특별히 사랑하는 점은 골목마다 촘촘히 서린 이야기이다. 책에는 작가가 수집한 이 지역의 민담과 설화와 미신 등의 온갖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특히 밤섬의 폭파를 둘러싼 저자의 집요한 추적과 사랑은 눈길을 끈다. 밤섬은 작가에게 바로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수수께끼이며 “오래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기묘하고 아련한 서사시”이다. 비극적이면서 신비롭고 경이로운 밤섬의 지난 역사를 일별하면서 작가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없는 것, 인간의 권리 외에도 우리가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는 동네가 있다는 것
어떤 동네를 오래 상상하고, 계속해서 세부사항을 덧붙이고, 그곳을 움직이는 힘을 궁리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 바로 옆에는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겠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의 골목과 거리는 어떤 풍경일까. 그곳 사람들은 어디로 출근하고 생활용품을 어떻게 살까. 어떤 길에서 개를 산책시키고, 저녁을 먹고 나면 어디에 갈까. 주말에는 뭘 할까.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까. 일하고 쇼핑하고 식사하고 수다를 떨 때 그곳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궁리를 하다 보면 어떤 삶이 내게 좋은 삶이 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궁리를 얼토당토않은 공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독자에게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말을 빌려 힘 있게 외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연세대 공대 졸업 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이달의기자상, 관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을 받았다.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장편소설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 단편 「알바생 자르기」로 젊은작가상, 단편 「현수동 빵집 삼국지」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그 외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호모도미난스』,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산 자들』,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 『팔과 다리의 가격』, SF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책, 이게 뭐라고』를 썼다.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을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