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그와 마주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조우하게 될 줄 몰랐다.
앨범처럼 간직하고 싶었던 글의 판권 계약을 위해 방문한 제작사에 믿을 수 없게도 그가 나타났다.
“내가 뭘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아무리 이깟 푼돈에 팔아먹을 만큼 하찮은 기억이라도, 최소한의 상도는 지켰어야지.”
전과 같은 다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외양 역시 달라졌다. 살이 내린 듯 날카로워진 턱선과 전보다 한층 깊어진 눈매는 시간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만들었다.
“뻔뻔하긴.”
경멸 어린 시선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을 수밖에 없었다.
“새삼스럽게 뭘. 어쨌든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어. 잘 지내.”
그것이 그와의 끝일 줄 알았다.
지금까지 잘 해냈던 것처럼, 그가 없는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하지만 이건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
“나랑 상관이 없다는 아이가 어째서 나를 닮은 건지.”
다시 나타난 그가 그녀의 일상을 흔들었다.
더 이상의 거짓말은 소용이 없었다.
“전부를 다 잃어 봤던 내가, 무서울 게 있을 것 같아?”
“선배….”
“그러니까 현서야. 네가 나를 좀, 구원해 줘.”
끝난 줄 알았던 우리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