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붉은 꽃잎 같이 스며든 그날, 어리야. 기억하느냐? 안 돼!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보아도 여기. 딱 여기, 언젠가 이럴 수밖에 없는 날이 온다면 조금도 빗나가지 않게 단 번에. 너를 믿는다. 너를 사무치게 사모한다. 세자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끌어당겨 안았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소용이 없다. 여전히 검 끝이 세자의 가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가서 네 할 일을 해, 어리야. 세자가 검 자루를 쥔 손으로 와락 당겨 안았다. 세자가 무너진, 소복이 쌓인 눈 위로 검은 핏물이 번져나간다. 내 정인의 피가. “가자, 어미에게 데려다 주마.” 넌 내 손으로 끝장을 내어주마. 그를 한 번 쯤 돌아봐도 좋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무치게 사모한다는, 마지막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고 또 곱씹을 뿐.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나풀나풀 붉은 꽃잎이 날린다. 저하, 은애하옵니다, 사무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