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젠더교육 활동가의 치열한 성교육 분투기
성교육 책 아닌 성교육 책?
우리 사회가 차별과 혐오의 진탕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젠더’는 빠지지 않는 축이고, 성범죄을 포함한 젠더기반 폭력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 성교육(젠더교육)의 필요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곤 한다. 특히 미투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인 2018년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올라가 2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동의한 바 있고, 2020년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된 후 피해자 다수가 미성년자라는 점과 범죄 가담자의 숫자가 6만 명 이상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성교육의 중요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특히 아동 및 청소년과 가까이 생활하는 교육자나 양육자들에게 성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자주 언급되곤 한다.
그렇다면 ‘성교육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만큼 우리가 우리 사회 성교육의 방향과 구체적 실천을 고민하고 있을까? 성교육이 무엇인지, 그 실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기회가 우리 사회의 시민들에게 충분히 주어진 적이 있었을까? ‘성교육’이라고 하면 으레 ‘2차성징’과 같은 생물학적 지식, 성기 및 성관계 중심의 성 지식을 배우는 시간, 혹은 피해자/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양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콘텐츠 역시 많은 경우 “우리 아이가 이럴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를 중심에 둔 구체적인 지침과 매뉴얼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고, 콘텐츠의 수용자 역시 그것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성교육은 “생물학적 지식을 비롯해 인권과 젠더, 철학과 윤리까지 아우르며 몸과 세계를 연결해 바라보아야 하는 인식 체계를 담고 있는 영역”(141)이다. 성에 대한 지식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성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성평등한 관점과 가치관을 배우는 시간이며, 이는 민주 시민의 기본적 자질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성교육 책이 아닌 성교육 책이다.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성교육에 대해 우리가 가진 태도나 인식이 무엇인지부터 되돌아볼 수 있도록 질문하는 책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란 무엇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기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의 조건과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그래서 명확한 지침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도리어 혼란과 고민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 ‘성교육이 중요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실천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성교육이 무엇인지 충분한 논의를 해왔는지, 지금 우리의 성교육 현실이 어떠한지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지하게 해왔다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성교육은 여전히 구시대적 성교육이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예방에만 초점을 맞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넘어선 성교육(폭력예방교육)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이 책은 우리를 바로 그 고민과 질문의 장으로 초대한다.
전북 남원에서 친구들과 지역서점 겸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를 공동운영하면서 젠더교육, 타로상담, 글쓰기 등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저서로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