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쇼핑보다는 서점을 좋아하고, 파티보다는 승마와 산책을, 돌려 말하기보다 직설화법을 좋아하는 특이한 레이디 이사벨라. “제 약혼녀가 되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주 많습니다. 아마 영애가 좋아하는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프로포즈까지 특이하다. 그 특권이 마음에 들어 덜컥 약혼을 결정하는데 “영애가 저를 좋아하게 못 만들게 되면 약혼은 파기하는 걸로 하죠.” 제스퍼는 이사벨라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에게 요지부동인 그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파격적 제안을 하고, “입맞춤 한 번.” “네?” 그저 정략결혼의 상대라 생각했는데 거침없이 다가오는 제스퍼 공자에게 사정없이 흔들리는 그녀. [본문 내용 중에서] “입맞춤 한 번.” “네?” 이사벨라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과 제스퍼가 만나고 있을 때는 주변에 호위 기사나 하녀들은 없었다. 모두 멀찍이 떨어져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듣게 된다 해도 소문을 내지 못하게 입막음을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왕궁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이들에게 스캔들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사벨라는 머뭇거렸다. 제스퍼의 애마인 네카를 타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훤한 대낮에 그의 입술에 대담하게 입을 맞출 정도는 아니었다. 이사벨라가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제스퍼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사벨라가 놀라 뒷걸음질을 치려고 하자 그가 벽을 양손으로 짚어 자신의 품 안에 그녀를 가두었다. “어렵겠습니까?” “아니 그게…….” 이사벨라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제스퍼는 현재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 와 있는 총독이자 제국의 대공이기도 한 트라스트 대공의 아들이었다. 이사벨라는 약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공식적으로는 그의 약혼녀로 왕궁에 출입을 하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의 약혼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일종의 정략적인 약혼이었다. 제스퍼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이사벨라는 약혼을 하면 왕궁에서 누리를 수 있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녀의 주목적은 제스퍼의 약혼녀로서 이용할 수 있는 왕궁의 도서관과 그리고 드넓은 정원의 산책과 왕궁 마구간에 있는 말들을 전부 다 타 볼 수 있는 승마였다. 물론 그것 말고도 누릴 수 있는 게 엄청나게 많았다. 예를 들면 총독과 그 가족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서재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어제 들은 직후 서재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것 때문에 오늘도 왕궁에 온 이사벨라는 제스퍼가 승마를 제안하자 신이 나 마구간으로 함께 움직였다. 그곳에서 처음 제스퍼의 애마를 보자마자 한 번 타 보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애마인 네카는 흔한 말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기마병으로 탈 때 이용하는 말이기도 했거니와 아주 좋은 품종의 말이었다. 후작저(邸)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런 말이었다. 그런데 제스퍼가 거절을 하는 대신 입맞춤을 한 번 하면 태워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제스퍼와 약혼한 지 어느덧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두 사람은 공식 석상에서 손을 잡거나 춤을 출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신체적인 접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정원에 세워진 석상처럼 보여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제스퍼가 말한 것이기에 이사벨라는 사실 처음에는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녀가 웃으면서 이 자리를 무마하려고 할 때였다. “못하겠으면 네카는 다시 마구간으로 들여보내죠.” 그 말에 발끈한 이사벨라는 평소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다. “열 번 할게요. 열 번 타게 해주세요. 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