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이미지로 남편 마강준과 살고 있는 함예리, 늘 출장을 다녔던 남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재벌의 사생아였던 예리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결혼을 감행했지만 이미지만 맑은 신부였을 뿐 실은 보통기준으로 적당히 나태하고 적당히 지저분한 모습이 함예리의 실체였다. 하지만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실체를 숨기고 청결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늘 출장을 자주 다녔던 남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일도 중요하지만 부부 관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출장을 줄이겠다고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는데…… . “그만 인정해. 우린 정말 잘 맞아.” “네, 그렇겠죠.” 한숨 섞인 대답이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헛도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마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불을 끄고 있으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가 느끼는 안락한 기분을 그녀는 아직 못 느끼는 모양이다. 잘 맞는다는 건 그만이 느끼는 걸까? 하긴 그녀는 워낙 완벽주의자니 아흔아홉 개가 맞아도 나머지 하나만 안 맞으면 거슬릴 수도 있었다.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를 이해해줘야 했다. 그도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이상하게 그녀를 만난 후부터 그는 나머지 한 개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아흔아홉 개도 맞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 심지어 그 반이라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적으로 운명을 만난 것이다. 운명? 나 참, 이제 하다 하다 운명까지 들먹이다니. 이건 내가 쓸 단어가 아닌데. 냉소주의자인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뭐 나쁠 건 없지. 원래 부부는 보통 인연은 아니니까. 그녀가 아니라면 아무리 아버지 때문이라지만 함부로 인생의 반을 내줄 생각은 못 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