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시작은 술김이었다. 핑계, 구실, 변명 모든 게 통하는 마법에 기대 잠시 서로의 현실을 잊었다. “난 강채원과 보낸 시간이 마음에 드는데. 너만 괜찮다면 계속 이어 가고 싶어.” “…….” “우리 이제 사랑 같은 거 없어도 몸을 섞을 수 있는 나이 아닌가. 이왕 이런 사이인 거 부탁 하나만 하자.” “부탁이요?” “형이 결혼하기에 앞서 나와 연인인 척해줘. 형이 아무래도 눈치챈 거 같아.” 우리는 허울뿐인 관계였다. 처음부터 연애는 아니라고 선을 그은 남자였다. “내가, 지금 이민현 씨 눈에 예쁘게 보이는 거 맞죠?” “가만 보면 당연한 걸 묻는 짓궂은 버릇이 있어.” “예쁘다는 말 한 번도 해준 적 없잖아요.” “할 필요가 있나? 난 강채원이 예쁘든 아니든 상관없었어. 단지 네가 적당해서였지.” 비록 처음부터 이렇게 이용가치가 책정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러하다고 해도, “오피스텔까지 갈 시간 없으니까 근처 호텔로 가. 방송국에 데려다줄게.” 그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날 듣게 된 최고의 찬사. 이거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