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공유재산, 민주주의, 농업주의, 관용주의, 쾌락주의, 반전주의와 같은 이념에 근거한다. 우리는 그 모든 이념이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흔히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면 도리어 ‘어딘가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할 정도로 그 묘사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그 이념에도 친밀감이 느껴진다. 여기서 현실적이고 친밀하다고 함은 거기에 쓰여 있는 현실비판이나 미래제시가 너무나도 박진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어의 친구였던 에라스무스는 그 책이 ‘국가악의 근원’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사실 그가 그리고 있는 이상사회는 바로 르네상스 사회의 지향이었고, 이상적 인간은 바로 르네상스 인간과 근대적 인간의 지향이었다. 즉 현세적 행복의 긍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 공정한 ‘법의 지배’의 확립이라고 하는 정치적 요구, 모든 사회악을 낳은 돈의 부정, 귀족의 태만과는 대조적인 노동의 미덕, 기독교적 윤리와 인문주의적 교양의 융합에서 생긴 인간성의 이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