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니의 아버지 그랑데 영감은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수전노의 전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랑데 영감은 아내의 지참금을 바탕으로 뛰어난 투기 실력을 발휘하여 막대한 재산을 일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딸에게까지 수전노의 생활을 강요하며 황금에의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결혼 적령기에 달한 외동딸과 사돈을 맺기 위해 문턱이 닳도록 그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로부터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려고 그들의 호의를 마음껏 이용한다. 한편 그의 외동딸 외제니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는 그녀의 사촌인 샤를 그랑데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멋쟁이 파리지앵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파산하게 되고, 그 치욕을 면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이러한 불행은 외제니와 그랑데의 사랑에 불을 지피는 동시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 무일푼이 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가 7년 만에 부자가 되어 돌아오지만, 더 이상 헌신적 사랑을 맹세하던 순진한 청년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랑데를 향한 외제니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이 번역서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펴낸 플레야드 총서 제3권의 ≪Eug?nie Grandet≫를 원본으로 하였다. 전체 내용의 절반이 조금 넘는 분량으로, 외제니와 샤를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스토리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발췌했으며, 소설의 서두와 결말 부분을 살림으로써 발자크 글쓰기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 de Balzac, 1799∼1850)는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다. 그는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수많은 콩트를 썼다. 자기보다 서른두 살이나 많은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발자크의 어머니는 발자크가 태어나자마자 유모에게 양육을 맡겼고, 여덟 살 때 기숙학교로 보낸 뒤 6년 만에 쇠약해진 심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를 찾지 않았다. 이러한 ‘불행한 기혼녀’와 그 여성이 지닌 냉정한 모성이 발자크 소설의 주요한 모티프다. 이와 함께 많은 작품의 여주인공에게서 발자크에게 물질적·정신적 도움을 준 여인들의 단편적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낭만주의가 꽃을 피운 시대에 사실주의의 문을 연 작가로 문학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발자크는 1841년에 그동안 자신이 써낸 모든 작품과 앞으로 써낼 작품의 목록을 가지고 ≪인간 희극≫이란 총서를 기획한다. 등장인물만 2천 명이 넘는 ≪인간 희극≫은 1789년 대혁명 직후부터 1848년 2월 혁명 직전까지 프랑스 사회의 파노라마를 정치·경제·사회적 영역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내밀한 사적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또한 파리뿐만 아니라 지방과 시골까지 아우르면서 어느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자 한 발자크다운 야심의 산물이다. 그중에서도 ≪외제니 그랑데≫를 포함하여 ≪고리오 영감≫, ≪사촌 베트≫, ≪골짜기의 백합≫, ≪마법 가죽≫, ≪루이 랑베르≫, ≪사라진 환상≫, ≪세라피타≫, ≪미지의 걸작≫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