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는 1802년 프랑스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집권기에 장군을 지낸 아버지 조셉 레오폴드 위고와 중산층 부르주아 가정 출신의 어머니 소피 트레뷔셰 사이에서 태어났다. 거의 독학으로 작시법을 터득한 위고는 열다섯 살에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프랑세즈에서 주최하는 시 경연 대회에서 입상하고, 열일곱 살에는 툴루즈의 백일장에서도 상을 거머쥐며 일찍부터 문학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스무 살에는 형제들과 ≪문학수호자(Conservateur litteraire)≫라는 잡지를 발간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키웠다. 1823년에는 첫 소설인 환상적 색채의 ≪아이슬란드의 한≫을 발표했고, 1828년에는 시집 ≪오드와 발라드≫를, 1827년과 1829년에는 희곡 <크롬웰>과 <에르나니>를 발표하는 등 데뷔 초기부터 시, 소설, 희곡을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주었다. 또한 노디에, 라마르틴, 비니 등 동시대 문인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낭만주의 세나클을 이끌며 동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위고는 단순히 폭정에 반대하고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정을 몰아내고 공화제를 확립하는 데 앞장선 투사였다. 그는 근본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 개혁주의자이자 자유수호자였다. 사회 불평등을 비판했고, 생산에 재투자하지 않고 이득만을 챙겨 가는 부자들을 비난했으며 민주주의 권력에 반하는 폭력에도 적대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출판의 자유와 의무, 무상·세속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사형제 폐지와 노동자의 주택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통선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위고는 문학 창작과 사회 참여를 동시에 실천한 행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