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홍루> 500년 이후, 그들에게 벌어진 혼몽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화연이 사라졌다. 자신의 분신처럼 여긴 비녀 하나와 흑비파를 놔두고. 흔적도 없이.
혼인하고 백 년이 흐른 뒤 벌어진 그 사건 이후, 현신휘는 사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황화연을 찾았고 다시 조우할 수 있었다.
모든 기억을 잃은 채, 평범하되 평범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던 그녀를.
“그런가, 그대였군.”
“날 알아요?”
“조금.”
“그쪽이랑 저, 오늘 처음 봤거든요?”
“그랬지.”
“……이 나라는 사람 꼬실 때 그렇게 꼬셔요?”
“그대 말처럼 이렇게 꼬시면 내게 넘어와 주겠나?”
대체 사라진 사백 년의 시간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목표이자 간절한 희망이었다.
여우 구슬을 가진 호족들이 모여 사는 호국(狐國). 그곳에서 호족과 인간의 혼혈이자 요력조차 사용할 수 없는 내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
모진 핍박 속에서 만나게 된 구원자 하랑. 보답할 수 없는 사랑을 품은 하랑의 구애에 갈팡질팡하던 때에 나타난 또 다른 사내, 신휘.
“나는 안 보고 싶었느냐 묻는 거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자연스레 다가와 곁을 맴도는 그에게서, 생애 처음으로 묘한 감정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두 사내의 집착과 배신에 또다시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게 되는데…….
표지: HO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