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누구냐?” “그러는 넌 누군데?” “난 이 나라의 왕자다.” “뭐? 하하하하. 네가 왕자면, 난 이 나라의 공주다.” 어머니의 유품인 목걸이를 전달 받은 날부터 기이한 꿈을 꾸는 유빈. 너무나 사실적인 꿈에 몽유병인가 의심하는데. “어느 전의 나인이냐?” “유빈, 이유빈이에요.”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반복된 꿈에 사실임을 인정하고, 현재와 다른 차원의 세계에 갇히게 된 유빈은 화륜국의 왕 천윤을 만나고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의 후궁이 된다. “그대는 짐이 지켜주겠다.” “아니, 나는 내가 지킬 테니 당신은 당신을 지키도록 해요.” 북풍한설보다 추운 왕궁에서 약한 왕권으로 오롯이 혼자 감싸 안고 감내해야 했던 천윤은 유빈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고, 화륜국의 힘없는 왕 천윤. 왕권을 위협하는 효영 대비, 그의 이복동생 태연 신비한 목걸이를 가지고 나타난 유빈. 이들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된다. [본문 내용 중에서] 서로의 숨결을 나누는 극히 짧은 순간이 지나갔다. “……어찌하여 떠밀지 않은 것이지?” 처음으로 맛보는 지독한 달콤함에 취해 이성을 잃어버릴 거 같았지만, 그는 최대한 자제력을 끌어모았다. 아직 그녀의 마음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내가 떠밀길 바랐나 보네요?” 유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그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니라고 밀어내놓고, 그의 끌어당김 한 번에 견고히 쌓아둔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아 심히 부끄럽기까지 했다. “농은 이제 그만 하지? ……속이 타들어 가는 거 같으니까.” 통증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 유빈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 넘치도록 담긴 통증이 그녀의 마음을 욱신거리게 했다. 자신이 뭐라고 이 남자를 이리 아프게 하나 싶었다. ‘내가 마음을 돌리면 몇 명이나 불행해질까? 알지도 못하는 다수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이 사람을 계속 아프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가면…… 이 사람 하나만큼은 확실히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내가 당신에게 가면…… 당신은…… 당신은 행복할까요?” 유빈의 마음속 고민이 결국 질문이 되어 튀어나왔다.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 한쪽이 그대로 인해 가득 차올라 더없이 행복할 테지. 그러니…… 짐이 행복한 걸로 만족해주면 안 되나?” 천윤은 유빈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동안은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쌓아온 가치관이 달라 그녀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저돌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밀어붙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해졌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에겐 불안함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태연을 친근히 대하는 그녀의 행동조차도 그에겐 불안함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시간을 주세요.” 천윤의 가슴에서 손을 뗀 유빈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마주쳤던 그의 어린 아들이 떠올라 다시 한 번 마음이 들쑤셔졌다. “그건 안 되겠는데? 시간을 주면 도망갈 게 분명하니 지금 이 자리에서 말을 해줬으면 좋겠군.” 천윤은 유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을 보게끔 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일체의 거짓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그는 결연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그대와 짐만 생각하길.” 유빈의 눈빛에 담긴 흔들림을 감지한 천윤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작은 머리에 가득 고여 있는 잡념들을 다 빨아들이고 싶었다. “……을 줄 알아요.” “음? 뭐라 하였지?” 낮게 웅얼거리듯 말하는 유빈의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천윤이 되물었다. “나…… 속상하게 하면…… 죽을 줄 알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