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연정을 접으려는 사내, 아령.
은밀히 여인을 상대하는 남기(男妓)의 삶에 지칠 때면
산에 올라 대금을 연주하며 그 설움을 풀곤 했다.
그리고 내 가락에 눈물짓던 여인을 만나게 된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한 여자의 사내로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영의정의 여식.
신분을 속여서라도 곁에 머물고 싶었지만
점차 커지는 나의 욕심이 그녀에게 화를 입힐까 두려워
연모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결국 내 치부를 드러내야 했다.
“소인, 아가씨와 어울릴 수 없는 더러운 남기입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신분의 벽을 허물려는 여인, 은평.
산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듣게 된 대금 소리는
제 아픔을 알아 달라 말하는 서러운 그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가락을 지어낸 사내의 처연한 눈빛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은 온전히 그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 만인이 손가락질하는 비천한 남기.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애써 날 밀어내려는 그를 잡아 두기 위해선
결국 돈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 전두(纏頭)로 도련님을 사면 되겠습니까?”
서로의 심장에 녹아드는 단 하나의 사랑가.
그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이 세상에는 온전히 두 사람만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