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구

· 에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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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디자이너 유은아. 하지만 남자 속옷은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남자의 신체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고, 알고 싶지 않았던 그녀에게 닥쳐온 숙제. 커플 속옷을 디자인 하라. 바로 그때 나타난 남자. 여자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남자. 이 남자라면…… 하지만 상황은 예기치 않게 흘러간다. 소리를 지르며 나와야 했을까? 어차피 내려진 팬티를 다시 올리는 것은 똑같다. 그렇다면 모르는 척,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았기에 그 자리에서 볼일까지 마치고 나왔다. 미쳤다. 미쳤어. 앞으로 그 남자가 나를 볼 때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여자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정도인데…… 그래도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 생활과 도덕성 사회성을 비롯한 국영수를 배운 한국의 지성인으로서…… 에라 모르겠다. 창피하다. 그래 모르쇠로 일관하는 거야. 난 그런 적이 없어. 철면피 작전. 방문에 귀를 바짝 대고 그가 출근하는 소리가 나는지 예민하게 관찰했다. 드디어 현관문이 띠리리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다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휴, 드디어 출근했나 보다. 은아는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그가 열어 놓고 간 커튼 때문에 거실은 평소와 다르게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 은아는 다시 커튼을 닫았다. 그리고 여전히 속옷만 입고 있는 자신을 슬쩍 보며 말했다. “속옷만 입는 게 여름에는 정말 편한데…….” 이제 몸의 자유를 잃게 되겠구나,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뭐라도 먹고 다시 자야겠단 생각으로 달걀부침을 하면서 웅얼거렸다. “역시 모델이라 몸매가, 다리랑 엉덩이랑.” “다리랑 엉덩이랑 뭐요? 지금 은아 씨의 다리와 엉덩이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리 여름이지만 아침인데 춥지 않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율의 말에 은아는 몸을 벽 쪽으로 완전히 틀었다. 못 들은 척, 벽과 하나처럼. 그 안으로 스며들고 싶은 마음으로……. 그러면서 지금 자신이 어제와 같이 속옷만 입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데이면 어쩌려고 그런 차림으로 요리를 합니까?” 은아는 하는 수없이 “히” 하고 바보처럼 웃으며 눈을 찡그려 우는 얼굴로 방으로 달렸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시 후 웃음을 머금은 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 출근합니다. 홀딱 벗고 있기로 한 겁니까? 아니면 오늘도 실수입니까?” “더, 더워서 그랬어요.” “달걀부침은 식탁에 있습니다. 식사하고 일해요. 감기 조심하고.” 방문을 빠끔 열고 율이 신발 신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율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특이한 캐릭터야, 아주 희귀해요. 천연기념물이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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