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기를 마주한 그의 호소력 짙은 연설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들로 당대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한 알베르 카뮈의 강연록 모음집 『카뮈의 말』이 출간되었다.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이루어진 서른네 편의 강연 및 연설 들을 엮은 이 책은, 우리에게 『이방인』 『페스트』 등으로 익숙한 카뮈를 온전한 육성으로 새로이 만나게 해준다. 철학가, 작가, 극작가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활발히 이 세계에 참여했던 그이기에, 그의 견해를 듣고자 국내외의 사람들은 수많은 연설과 회담의 장으로 카뮈를 초대했다. 자신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했기에 자주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카뮈는 결국 그들 각자의 불행과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응했다.
이 책에 실린 연설들은 1937년의 연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루어졌다. 전쟁의 참상을 앞에 두고 카뮈는 남아 있는 공포 속에서 ‘인간의 위기’가 무엇인지 진단해낸다. 너무도 많은 살인이 자행되는 상황과 그에 무뎌진 나머지 살인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다소 번거로운 짓으로 용인되는 참혹한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위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존재를 죽이는 일이 그것이 당연히 불러일으켜야 할 혐오감과는 다른 방식으로, 파렴치한 행위가 아닌 무언가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인간의 고통이 마치 식량을 배급받거나 버터 한 조각을 얻으려고 억지로 줄을 서는 것만큼이나 똑같이 다소 번거로운 짓이라고 용인되기 때문입니다.
-41쪽
한편으로는 증오로 물든 세계가,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투쟁의 가능성을 저버린 개인의 허무주의가 놓여 있는 가운데 카뮈는 이 둘을 동시에 부정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 인간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소통’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간적으로 말을 건네면 언제나 인간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불의와 예속, 공포라는 세 가지 질병으로 뒤덮인 세계 속에서 인간은 논쟁하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했으며 카뮈에게 이는 모두 소통의 부재를 의미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대화의 가능성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격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된 소통 없이는 오로지 독재자의 침묵만이 남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카뮈의 목소리는 고통이 펼쳐지는 바로 그 순간의 현실을 반영하며, 그동안 소설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의 생생한 얼굴을 우리 눈앞에 가져다놓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작가, 극작가이자 언론인. 1913년 11월 7일 프랑스령 알제리 몽도비(현 드레앙)에서,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뤼시엥 카뮈와 카트린 엘렌 생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버지가 사망하고, 이후 외할머니와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 아래 가난한 생활을 이어간다. 알제의 벨쿠르공립학교에서 만난 스승 루이 제르맹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대학교의 철학과에서 수학한다. 같은 시기 철학 교사 장 그르니에를 만나 사상의 기초를 다지고, 1935년 그의 권유로 알제리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이념의 충돌로 인해 2년 뒤 탈퇴한다. 1936년에 철학 고등교육 수료증을 취득한 뒤 철학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폐결핵 후유증으로 인해 꿈을 접는다. 이후 기자, 사립학원 강사 등의 생활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1937년 첫 번째 책인 산문집 『안과 겉』을 출간하고, 1년 뒤에 산문집 『결혼』을 펴낸다. 1942년에 출간한 소설 『이방인』과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로 이름을 알렸고, 1947년 전염병을 다룬 소설 『페스트』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그 밖의 발표작으로는 『계엄령』(1948), 『정의의 사람들』(1950), 『여름』(1954), 『전락』(1956), 『적지와 왕국』(1957) 등이 있다. 그중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1951)의 출간은 오랜 우정을 쌓았던 사르트르와의 결별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불어 연극 〈오해〉(1944), 〈칼리 굴라〉(1945) 등을 발표하며 극작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카뮈는 다양한 신문사에서 일하며 언론인으로서의 면모 또한 보여주었는데, 특히 한동안 운영을 맡기도 했던 비밀 지하신문 〈콩바〉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7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상 연설문을 통해 스승 루이 제르맹에게 상을 헌정했다.
1960년 1월 4일, 루르마랭에서 가족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이자 갈리마르 출판사 사장의 조카인 미셸 갈리마르의 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꿀벌의 언어』 『소설 때때로 맑음』 1~3권이 있으며, 역서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외젠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 로맹 가리의 『인간의 문제』, 에리크 뷔야르의 『그날의 비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