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 소설! “사랑해요.” “이런,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어. 나, 사랑하지 마. 나도 너를 사랑할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앞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지금껏 해온 섹스는 우리 두 사람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내 발목을 잡는 미끼로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 재서 넌 그 정도의 상식은 가진 여자일 테니까.” 독고신, 그에게 사랑이란 그저 유희였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재서를 만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에게 저당 잡힌 1년, 모든 것이 막막하고 힘들기만 했던 그때, 그녀는 그의 유일한 안식이었고, 탈출구였다. 그러나 그는 어렸고, 어리석었으며, 할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약한 남자였다. 그래서 그녀를 버렸다, 잔인하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이제 절대로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남자, 독고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윤재서. 그녀를 잡기 위한 나쁜 남자의 구애가 시작되었다! [본문 내용 중에서] “우리가 한 건 섹스뿐이었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저 입을 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재서는 그럴 의향인 듯 마주 잡은 손을 떼어 힘주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섹스만 하면 되지, 갑자기 날 피하는 이유는 뭐죠?” “그런 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는 여잔가, 너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데 별다른 이유가 뭐 있겠어? 한마디로 싫증이 난 거지. 만나서 섹스만 하면 된다고? 아니, 한 여자랑 하는 섹스도 금방 싫증 나 버리더라고. 네가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여자한테 싫증을 잘 내거든. 이유라면 그게 이유인 것 같군.” 그의 유들유들한 말솜씨에 재서는 부들부들 떨었다. “싫증이 나서라고요? 그러네요, 싫증난 여자랑 어떻게 계속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하고 섹스 하겠어요. 그게 이유란 말이죠?”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가 이런 남자였을까. 아니라고, 그가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면 좋을 텐데. 그건 그저 그녀의 바람이었다. 재서는 상처 입은 눈으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 안에 항상 있었던 제 모습이 이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른 이유가 더 있기를 바라는 건가?” “……모르겠어요.” “이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쿨하자고. 남녀가 만났다가 헤어지는데 모두 너 같이 찾아와서 따지고 든다면 어느 남자가 연애하고 싶겠어, 안 그래? 그러니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라고.” 그가 얄미웠다. 잘생긴 얼굴도, 조롱하는 저 입도. 참을 수 없었던 재서의 손이 그의 뺨을 세게 때렸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네요, 똥 밟았네요. 내가.” 재서는 이 공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이면 될 것 같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재서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다리에 힘을 주어 현관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그동안 고마웠다.” 어느새 뒤따라온 그의 깐죽대는 목소리에 재서는 문고리를 잡은 채 휙 뒤돌아섰다. “나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