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뚫고 병원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병원 복도를 다급하게 걷는 남자의 트렌치코트 자락에서 빗방울이 흘러내리며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남유진? 우리 준석이랑 아는 사이지?” “아닌데요.” 움찔, 그가 한발 성큼 다가온다. 유진은 놀라 한발 뒤로 물러났다. 186cm의 큰 키의 그가 빛을 등지고 다가오자 자신이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쿵, 등이 차가운 벽에 닿으며 여기가 구석이고, 도망갈 데가 없다고 말해 준다. “그럼, 누가 시켰어?” “왜… 그러세요? 전 그냥 병실을 잘못 찾은 거뿐이에요.” “웃기지 마. 네가 찾는 메모리는 원래 병실에 없었어.” 우르릉 쾅! 사실대로 말하라고 천둥이 울부짖는다. 천장의 전등까지 깜빡깜빡, 그 때문일까 남자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며 거짓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무섭게 노려본다. 뭔가 잘못됐어. 지수의 부탁을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어. 지수의 부탁은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거였는데. 이러다 겨우 얻은 직장까지 잃게 생겼다. 그게 석도준 대표와의 첫 만남이고, 그 시간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석 대표의 애인인 척하다 청첩장까지 돌리고 결혼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가짜 신부로 그와 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