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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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중력을 압도하는 성찰과 희망의 고백

198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무크지 『시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고광헌 시인의 두번째 시집 『시간은 무겁다』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신중산층교실에서』(청사 1985) 이후 무려 26년 만에 선보이는 이 시집에는 촉망받던 농구선수에서 해직교사, 사회운동가, 언론사 대표 등의 이력을 거치며 격동의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시인의 신산한 삶과 올곧은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나온 “삶의 짠한 곳을 콕 집어내어 환하게 하고 아득하게 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잔잔한 울림을 던지며 가슴을 “울컥, 하게 만드는”(안도현, 추천사)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지난 세월, 암울한 시대에 맞서 온몸으로 “최루탄 산발하던 시간 속”(「즐거운 추억」)으로 달려왔던 시인은 잠시 가쁜 숨을 가다듬고 “유일하게 평화로 남은/유년의 시간”(「나무들은 반듯하다」)을 거슬러 올라간다. “씀바귀 같던 그 시절”(「오누이」), “식민지 하늘, 어두운 들판”에서 “저당잡힌 생”(「가을 내소사에서 아버지를 보았다」)을 살았던 아버지와, “우물 속으로/무심한 별들이 쏟아지던 밤” “교복이 입고 싶”어 흐느끼던 누님과, 누님의 “얇게 여윈 잔등 쓸어주며/목젖 아래로 우시던”(「누님의 우물」) 어머니가 아련한 추억 속에서 떠오른다.

어머니/머리에 보자기 두르고/학교 오시던 날//누런 보리밭 옆 운동장으로/5월 하늘 새까맣게/무너지던 오후//(…)//쪽 풀린 어머니의 검은 머리칼/서울 와서/가발공장 여성노동자/데모에서 보았다//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수업료//그때/어머니 전생애를 잘라/조용히 머리에 두른 것이다(「어머니가 쓴 시」 부분)

돌이켜보면 “위로받고 싶은 슬픔이 너무 컸”(「회기동 한 시절」)던 시절, “산에 간 큰성/살릴라고 십삼년간/감악소 담벼락에” “몇동이나 되는”(「다시, 어머니가 쓴 시」) 눈물을 뿌렸던 어머니는 특히나 시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되살아난다. 통한의 세월을 살면서도 “죽음에 맞불을 놓으”며 “생의 품격”을 잃지 않고 “기품이 넘치던”(「시간처럼 무거운 물건 보지 못했네」) 어머니의 삶은 “거친 발길에 제 몸 맡”기며 “밟히면서 강해”(「차전초」)지는 민중의 삶, 그 자체이다.

수레바퀴에 깔리면서 살아가는 풀/바퀴에 깔려 몸이 납작해지며/숨이 넘어가는 순간/제 씨앗을/수레바퀴나 짐승들 발밑에 붙여/대를 이어가는 풀//모든 풀들은 짓눌리는 고통을 피해/들로 산으로 달아나/함께 살아가는데/그늘 한 점 없는 길가에 몸 풀고 앉아/온몸이 깔리면서/생을 이어간다//수레의 발길이 잦을수록/바퀴가 구를수록/더욱 안전해지면서 멀리 가는 삶/질경이는 밟히면서 강해진다(「차전초」 부분)

상처로 얼룩진 쓰라린 시대를 견뎌온 ‘어머니’의 기품을 가슴에 새기며 가파른 삶의 현장을 숨가쁘게 달려온 시인은 이제 “섣부르게 이기려는 흉내 내면서”(「마흔」) “백미터 달리기로 살아온 세월”(「나무들은 반듯하다」)을 되돌아보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제 겨우 용서를 말”하는 “쓸쓸한 후회”와 “한없이 나약했”던 “죄책감”을 “돌릴 수 없는 나이테 앞에서 고백”(「이제 용서를 말하겠네」)하면서, “몸속 어디쯤에 숨겨둔 눈물”(「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을 터뜨려 “근심/가득한 몸”으로 운다.

몸이 운다/아프다고, 슬프다고/고함지른다/마음보다 먼저 울어버린다//근심/가득한 몸//더이상/상처를 안고는 살 수 없다고/오늘밤/조용히 관절 일으켜세우고/울어댄다(「몸에 대하여」 전문)

그러나 지난 세월에 회한만 남는 것은 아니다. “누구 앞에 선다는 것은/배우는 일이라는 걸”(「즐거운 추억」) 깨달은 시인은 “뻔히 질 줄 알면서/앞질러 달리던 시절”(「그대, 다시 박수 받지 못하리」)을 새삼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던져/누군가의/생을 거룩하게 하고//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가슴에 품어/희망을 이어간 사람들”(「겨울 등고선」)을 위하여 “정직한 슬픔의 노래”(고명섭, 해설)를 부른다.

비우지 않고/소리 채울 수 없다지만/버리지 않고/크게 울 수 없다지만//나, 저무는 5월/미처 채우지 못한/노랠 불러야겠네//다들 이제 끝났다고/발길 돌릴 때/혼자 기어코 울어버린 사내를 위해/노랠 불러야겠네/저 넘쳐나는 눈물 불러온 경계 위에서/오늘, 기어코 노랠 불러야겠네//너를 위해/처음부터 비우고/나를 위해 마지막까지 울어버린/한 사내를 위해//기다리다 홀로/노래가 되어버린 사내를 위해/차마 소리가 되지 않는 노랠 불러야겠네(「노래」 부분)

시인은 이번 시집을 펴내며 “시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킨 시간이 멀고 무겁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하지만 “삶의 현장의 부름에 응답하느라 시를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그는 시인이었”고, “저 세월 몰래 쓴 시들”이 보여주듯이 “날마다 시인으로 사는 시인이었다.”(해설) 그는 여전히 “빈집에/홀로 피어/발길 붙드는 꽃들”(「빈집」)에게서 애정어린 눈길을 거두지 않고, “하찮게 보이는 것에”도 “희망을 품는”(「큐레이터는 혼자였네」) 다감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 자신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시인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오늘, 시대의 부름에 따르느라 오랜 시간 침묵했던 한 서정시인을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예쁜 축하 화분이 왔는데요, 리본에 쓰인 글이 가슴을 때립니다//祝 受傷!//상처를 상으로 받으니 축하한다는 건데요, 세상 어떤 시보다 더 시적이더라고요, 가슴속에 죽비가 떨어지데요, 시인은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한 상 받아내는 운명이잖아요//시인에게 상은 그저 아름다운 모욕이겠지요(「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부분)

Changbi Publishers

Acerca do autor

195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고 경희대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시 무크지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5월시’ 동인 활동을 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신중산층 교실에서』와 『5월』(공저),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공저), 사회평론집 『스포츠와 정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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