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50주년 기념 『캐리』 신장판***
장르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 놓은 20세기 공포 소설의 걸작 『캐리』가 출간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오늘날 공포 소설의 대가를 넘어 이야기의 제왕이란 수식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세계 최고의 스토리텔러 스티븐 킹을 있게 한 기념비적인 데뷔작이다. 가정에서는 광신자 어머니의 통제를 받고 학교에서는 따돌림당하던 소녀 캐리 화이트가 잠재되어 있던 염력으로 피의 복수를 펼친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교사였던 스티븐 킹으로 하여금 전업 작가가 되기에 충분한 수익을 안겨 주었고, 1976년 개봉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영화의 성공에 탄력을 받아 당시 400만 부 가까이 판매되며 공포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분야에서 보다 앞서 성공을 거둔 아이라 레빈의 『로즈메리의 아기』나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엑소시스트』와 비교하면, 악마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 대신 초능력을 지닌 10대 여자 주인공을 내세우며 당대 미국 소도시의 사회상을 세밀하게 그려 낸 『캐리』의 등장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소녀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세계에 악몽이 찾아들었다
메인주의 소도시 챔벌레인. 기독교 광신자인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캐리 화이트는 늘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던 고독하고 내성적인 열일곱 살 소녀다. 자라면서 성(性)에 관한 지식을 전혀 습득하지 못했던 캐리는 체육 수업 후 샤워실에서 초경을 경험하여 패닉에 빠져 버리고, 또래 여자애들의 비웃음과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잠재해 있던 염력이 발현된다. 그것은 캐리가 유아였을 때 이웃에 기현상을 불러일으켰던 미지의 힘이었다. 한편 괴롭힘에 일조했다는 데 죄책감을 느끼던 급우 수 스넬은 남자 친구로 하여금 자기 대신 캐리를 졸업 무도회의 파트너로 데려가게 하고, 학교의 징계 때문에 무도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또 다른 소녀 크리스 하겐슨은 앙심을 품고 불량아 빌리 놀런을 끌어들여 캐리에게 수모를 줄 계획을 세운다. 기대와 불안 속에서 이윽고 찾아온 무도회 날, 최고의 교내 커플이 선정되는 순간 챔벌레인은 피와 화염이 가득한 장소로 돌변한다.
쓰레기통에서 부활한 걸작,
미국의 진정한 공포를 담다
스티븐 킹의 첫 출간작인 『캐리』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 버릴 뻔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킹은 (후에 ‘리처드 바크만’ 필명으로 출간된) 세 편의 장편을 완성했지만 출판사와 계약을 하지 못했고 생계와 창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데 지쳐 있었다. 그러다 잡지에 기고하려 단편으로 쓰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쓰레기통에 던진 『캐리』의 원고를, 아내 태비사가 꺼내 읽고는 다음에 어떻게 이어질지 알고 싶다며 포기하지 말도록 설득했다. 그렇게 킹은 자신에게도 낯설었던 10대 소녀 캐리를 중심으로 계속 집필을 이어 나가 강압적인 어머니와 또래 고등학생들, 이웃 주민 등 챔벌레인에 사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고 기사, 논문, 회고록 등의 다양한 형식을 빌려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피에서 시작해 피로 끝나는 이야기이지만 진정한 공포는 유혈 장면이 아니라 디테일하게 그려지는 사회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잔인함에 있다. 평범하게 취급받으며 주류에 포함되기를 원했던 소녀가 종교적 맹신, 가학적인 또래 문화, 커뮤니티의 방관 속에서 희생당하고 파괴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다룬 『캐리』는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퇴색되지 않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걸작이다.
■추천평
킹이 그리는 ‘공포’의 이면에는 오늘날 미국의 빈곤과 방임, 기아와 학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진짜 공포가 항상 숨어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소설가)
마치 폭탄처럼 공포 장르를 뒤흔들었다. -램지 캠벨(소설가)
과거와는 단절된 매우 미국적인 형태의 공포를 제시함으로써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 변화는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을지도 모르나 많은 공포·괴기 소설이 양피지나 어두운 골목 혹은 보일 듯 말 듯한 무서운 존재를 연상시키는 M. R. 제임스나 H. P.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연장선에 있었을 때, 스티븐 킹은 피 양동이를 떨어뜨리며 등장해 더 편안하고 현대적인 캐릭터를 보여 주었다. 덜 우아하지만 더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제프 밴더미어(소설가)
현재까지도 구성과 인물의 목소리가 급진적으로 느껴지며, 남성 작가가 캐리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직도 놀랍다. 이 책의 힘은 여전하다. 관습을 따르지 않으며 심지어 독자의 기대도 예상하지 않던 젊은 작가의 별난 초기작다운 에너지와 비전이 있는데, 어쩌면 당시에는 그렇게 써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인기 있는 장르에서 이런 독특한 데뷔작이 가장 성공적인 문학적 성취를 거두었다는 점이 『캐리』의 제일 고무적이고 기이한 업적이라 할 수 있겠다. -애덤 네빌(소설가)
당대, 아니 어쩌면 모든 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포 소설가의 경력이 시작되는 지표로서 주목할 만하다. -존 코널리(소설가)
스티븐 킹은 언제나 인물 묘사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데, 그의 첫 작품 『캐리』에 나오는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묘사야말로 최고라고 생각한다. -사라 핀보로(소설가)
■줄거리
광신자인 어머니의 통제를 받고 자라며 학교에서는 늘 겉도는 존재였던 캐리 화이트. 어느 날 학교에서 또래 여자애들이 초경을 경험하고 충격에 빠진 캐리를 괴롭히는 사건이 벌어지고, 요동치는 캐리의 감정과 함께 잠재된 힘이 깨어난다. 죄책감을 느끼던 동급생 덕에 캐리는 고대하던 학교 무도회에 참석하게 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피로 얼룩진 아수라장이었다.
스티븐 킹 Stephen King
스티븐 에드윈 킹은 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두 살 무렵에 아버지 도널드 에드윈 킹이 집을 나간 이후 어머니 넬리 루스 필스버리 킹 슬하에서 형과 함께 자랐다. 위스콘신주, 인디애나주, 코네티컷주를 전전하던 일가는 킹이 열한 살이 되었을 무렵 마침내 메인주 더럼에 정착했다.
메인 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한 킹은 2학년 때부터 대학 신문에 매주 칼럼을 썼고, 학생 위원으로서 학내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반전 운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일하던 중 창작 워크숍에서 만난 태비사 스프루스와 졸업한 이듬해인 1971년 결혼했다. 이후 킹은 세탁소에서 일하다 햄프던 공립 고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그러는 틈틈이 잡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했다.
킹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1974년에 발표한 데뷔작 『캐리』로, 원래 중도에 포기하고 버린 원고를 아내 태비사가 쓰레기통에서 꺼내 읽은 후에 계속 쓰도록 조언한 결과 완성한 장편소설이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된 킹은 이후 『살렘스 롯』, 『샤이닝』, 『스탠드』 등의 대작을 연이어 출간했고, 특히 1986년에 출간한 『그것』은 모던 호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공포의 제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간의 심층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데 탁월한 작가로 알려졌지만, 공포뿐 아니라 SF, 판타지,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로 대중적 인기를 얻는 동시에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명실공히 ‘이야기의 제왕’으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 도서상 시상식에서 미국 문단에 탁월한 공로를 세운 작가에게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1996년에는 오헨리 상, 2011년에는 LA 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입증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브램 스토커 상, 영국환상문학상, 호러 길드 상, 로커스 상, 세계환상문학상 등 유수의 장르소설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도전한 탐정 미스터리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영미권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에드거 상을 수상하며 왕성한 활동을 과시했다.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로도 잘 알려진 킹은 미국 소설가 중에서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이 영상화된 인물로도 손꼽힌다. 『캐리』, 『샤이닝』, 『살렘스 롯』,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본』,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미스트』 등이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매년 출간되는 신작들 역시 업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스티븐 킹은 아내와 함께 메인주에 거주하며 계속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연세대 국문과 졸업. 시인으로 등단.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 『두이노의 비가』, 『캐리』, 『살렘스 롯』,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대지의 기둥』, 『끝없는 세상』, 『축복』, 『플레인송』 등, 독일어와 영어로 된 문학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