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여자나 만나 보라고 그러셨잖아요.” 권태로이 대꾸하는 정한의 목소리가 시리게 고막을 그었다. “아무 여자가 어떻게 연주가 되니!” “즐기다가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여자, 그게 어머니가 정의하신 아무 여자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서정한, 연주의 후원자이자 오너이기도 한 진영화 관장의 아들. 그의 첫 번째가 절대 될 수 없음을 알고도 시작한 관계였다. 첫 번째가 될 수 없으니 두 번째도 되기 싫었다. “연주야.” 정한의 손길을 거부하듯 연주는 뒤로 물러났다. “나중에 서로 할 일 끝나고 난 다음에 해요.” “서로 할 일?” 욕망으로 일렁이는 검은 눈동자가 짙고 깊었다. 절 보는 시선을 애써 피하며 연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도 오빠와 같은 시간에 맞선을 봐야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