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소비에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러시아 최고의 인기 작가 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1999)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다. 현재 러시아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펠레빈의 대표작으로, 그를 추종하는 열혈 독자들을 만들어내며 출간 첫 주 만에 2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P세대’는 1991년 소련 해체를 전후해 태어난 신러시아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펠레빈이 작품의 제목으로 삼으며 널리 쓰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국가 붕괴를 겪은 후 공산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믿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한 카피라이터의 이야기가 러시아 문학의 전통 위에 신화와 환상, 종교와 철학적 사유의 씨실로 촘촘히 직조된다. 이 작품으로 펠레빈은 리하르트 쇤펠트 독일 문학상을 받았으며, 2011년 빅토르 긴즈부르크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빅토르 펠레빈 최고의 소설……
펠레빈의 ‘모스크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파리,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과 나란히 놓인다.”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영화 <P세대>(2011)
『P세대』는 1999년 발표한 첫 주에 20만 부가 팔려나가며 수많은 펠레빈 추종자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역사적 변혁에 직면했던 러시아의 새로운 세대가 주인공이며, 제목의 ‘P세대’는 소련에 처음으로 수입된 서구 상품인 펩시콜라에서 유래한 ‘펩시 세대’ 혹은 ‘피즈데츠(헛소리, 말짱 꽝 등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 욕설) 세대’라는 중의적인 의미로 책 속에서 풀이된다. 이에 더하여 몇몇 평론가들은 ‘페레스트로이카 세대’ 혹은 ‘펠레빈 세대’로 뜻을 확장시켜 이해하기도 한다(펠레빈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어떤 설명도 거부하고 인터뷰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P세대』는 새로운 시대의 도덕적 가치관과 정체성 탐색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이야기 전개로 폭넓은 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작품이다. 실제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모든 소련인들에게 갑작스럽고도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70여 년 동안 삶을 지탱해온 체제와 가치관, 공산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져버렸고, 러시아인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P세대』는 이러한 혼돈과 부패가 절정이었던 1990년대 초, 옐친 시대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다. 파스테르나크의 책을 읽으며 시인이 되기를 꿈꾸던 문학청년 타타르스키는 국가의 붕괴와 함께 하루아침에 어떤 미래도 없이 거리로 내던져진다. 타타르스키와 같은 소련의 젊은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가치의 완전무결함과 영원성을 믿도록 교육받고 자랐지만, 완전히 상반되고 적대적인 두 개의 체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돈과 더불어 삶의 무게에까지 짓눌린 세대가 된 것이다.
그 후, 그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건 하나가 조용히 일어났다. 타타르스키가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을 즈음, 국가의 혁신과 개선 작업을 시작했던 소련이 지나치게 개선이 된 나머지 그만 존재 자체를 멈추어버린 것이다(만약 국가가 열반에 이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p.16)
영화 <P세대>(2011)
길거리 간이매점에서 담배를 팔며 살아가던 어느 날, 타타르스키는 우연히 만난 대학 동기의 소개로 광고업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소련의 이데올로기 시인을 꿈꾸던 그가, 자본주의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어 서양에서 들여온 제품을 러시아 소비자들에게 선전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소련 시절에는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주장하던 소비지상주의였지만, 서구의 무차별적인 상품 공격과 그 광고들은 어느새 러시아인들의 의식 속에 서구의 풍족한 삶을 동경하게 만든다. 작가 펠레빈은 작품 속에서 강신술로 불려나온 ‘체 게바라’의 영혼과, 마약을 하며 환각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신화 속 동물 ‘시루프’의 입을 빌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호모 자피엔스’ ‘바빌론의 우표’ 장 참조). 러시아의 경제 몰락, 정치 부재, 소비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광고의 혹사, 마약 중독 등 당시 러시아 현실의 구체적인 현상이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1962년 11월 22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군사학부 교수인 아버지와 중등학교 영어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985년 모스크바 에너지 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 1988년 고리키 문학대학 창작 세미나 과정을 들으며 이듬해 『과학과 종교』 지에서 편집 일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동양의 신비주의에 관한 원고를 담당하게 되고 1989년 첫 단편 「마법사 이그나트와 사람들」을 발표한다. 1991년 첫 단편집 『푸른 등불』로 러시아 소(小)부커상을 받고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연이어 『오몬 라』 『벌레들의 삶』 『공포의 헬멧』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크고 작은 문학상을 휩쓰는 동시에 큰 인기를 모으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4년 『뉴요커』가 뽑은 ‘세계의 젊은 작가 6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고, 2000년에는 러시아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2009년 한 온라인 잡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뽑혔다. 현재 러시아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강-문학적 형상과 기억들』 『현실과 기호의 이질동상성』(이상 공저)이 있으며,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와 도스토옙스키의 『악어 외』(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