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 시인 마야꼬프스끼는 1893년 7월 19일 그루지야 꾸따이스 근처의 바그다지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미술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마야꼬프스끼는 부친의 사망 이후 가족과 함께 모스끄바로 이주하여 상업 미술 학교 예비반에 입학하고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 사회 민주 노동당 볼셰비끼파에 가담한다. 이로 인해 미성년자이던 마야꼬프스끼는 〈세 번의 체포와 독방 구금〉을 당하고, 훗날 이 사건은 소비에뜨 작가들의 열렬한 찬양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이 갖는 중요한 의의는 감옥에서 마야꼬프스끼가 정치 활동에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예술과 문학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데 있다. 회심한 마야꼬프스끼는 모스끄바 회화 조각 건축 전문학교 시절에 만난 다비드 부를류끄와의 친교를 통해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딛고 화가로서 시인으로서 당시 한창 뿌리내리던 러시아 미래주의의 주역으로 부상한다. 미래주의와 볼셰비끼는 목적은 달랐으나 슬로건의 표면적 유사성 때문에 1910년대 러시아 미래주의는 혁명의 예술로 인정받고, 그 중심인물이던 마야꼬프스끼는 당연히 혁명의 시인이 된다. 이 시기에 마야 꼬프스끼는 잡지 『예술 좌익 전선 LEF』을 창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각종 신문, 잡지에 정치성 짙은 시와 평론들을 기고한다. 레닌 사망 후 소비에뜨 사회가 새로운 체제에 안주해 가면서 마야꼬프스끼의 삶은 고난과 모순으로 점철되기 시작한다. 마야꼬프스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비에뜨 사회에 적응해 보고자 노력했으나 이미 지나간 그의 시대를 되돌리지는 못한다. 깊어 가는 소외감과 불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뇌, 자신의 창작에 대한 불만까지 겹쳐 1930년 4월 14일 마야꼬프스끼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으로 『나』『바지를 입은 구름』『등골의 플루트』등이 있고 희곡으로 『미스째리야 부프』『빈대』『목욕탕』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