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텍스트는 장르를 떠나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시적 순례기처럼 읽어야 한다. 실제로 미술 작품에 대한 그의 관찰은 이제 막 습작기를 통과하며 자기만의 고유한 시적 어법을 찾아가고 있는 젊은 시인의 학습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보릅스베데≫를 쓸 무렵의 릴케가 풍경에 관심을 집중한 데에는 당시 지식인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세기말은 산업화된 도시 문명이 인간의 정신적 기반을 황폐하게 만드는 질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화 비관주의적 의식이 만연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술가들이 자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곧 도시 문명에 대한 염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본 자연은 낭만주의자들이 본 것과 같은 인간 친화적인 자연이 아니다. 릴케의 말대로 그것은 인간에게 무심한 자연, 그러기에 인간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하는 자연이다.
보릅스베데에 옹기종기 모여 예술가 마을을 이룬 풍경화가들에서 릴케는 진지한 자연 탐구의 모범적인 태도를 발견했다. 그들이 그린 풍경화에는 새롭게 발견된 자연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인간 자체가 자연으로부터 아예 추방되었거나,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의 일부분으로써 풍화작용에 적응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려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인젤 출판사에서 원색 화보를 곁들여 출판한 ≪Rainer Maria Rilke, Worpswede, Frankfurt am Main≫(1987)을 원전으로 사용했다. 수많은 인명에 대한 해설은 최근의 인젤 출판사판 릴케 전집 4권 중 호르스트 날레브스키(Horst Nalewski)가 발행한 ≪Rainer Maria Rilke, Schriften≫(1996)의 주석을 참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