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애인, 시인이 사랑하는 이들은 병이나 이별을 통해 시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지웠고, 그것은 시인을 슬픔에 빠뜨렸다. 그리하여 시인에게 남은 것은 손끝으로 말하는 일, 즉 시를 쓰는 일이 되었다. 이 슬픈 시집이 단지 슬픔 자체로만 끝나지 않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리면 "시인은 죽어버리고 싶다고 쓰면서 실제 죽음을 유예할 수 있"고 "시를 쓰면서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나와 나 사이의 불화를 중재할 수도 있게" 되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나 자신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시인이라는 것, 이것은 다행스러운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