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여성 서사를 만난다”
_서영인(문학평론가)
■ 책 소개
“지붕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과 사랑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 개정판 출간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김희재의 《탱크》 등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며 오랜 시간 많은 지지를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의 스물세 번째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체공녀 강주룡》은 1931년 평양 평원 고무 공장 파업을 주동하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일생을 그린 전기 소설이다.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심사 당시 “거침없이 나아가되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여성 서사를 만난다”(서영인 평론가), “이렇게 근사한 소설, 참으로 오랜만이다”(한창훈 소설가), “놀라운 생동감으로 역사의 책갈피 깊숙이 숨어 있는 아름다운 인간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정여울 작가)와 같이 심사위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205편의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작가가 구사하는 간도 사투리의 말맛은 ‘새터민일 것이다’ ‘나이 지긋한 기성 작가일 것이다’라는 추측과 함께 심사위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박서련 작가는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SF어워드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8년에 출간된《체공녀 강주룡》은 그의 첫 장편소설로, “가령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소설 속 인물이 누구냐고 하면, 언제나 답은 강주룡이다”(‘작가의 말’에서)라고 애정을 표했다. “쓰는 일이 고되다고 느낄 때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전의 나를 떠올린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이게 나의 마지막 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각오로 쓴 이 소설이 첫 책이 되었다는 것은 내 자존의 가장 깊은 근거 가운데 하나다”라고.
작가는 새롭고도 단단한 상상의 힘으로 미처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 속 인물 ‘강주룡’을 지금 우리의 곁으로 소환한다. 간도와 평양을 오가는 광활한 상상력에 ‘강주룡’이라는 매혹적인 인물을 불러낸 이 강렬한 이야기는 지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삶이란,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투쟁하는 것
뒤집어진 인간을 마주하는 뒤집어진 마음
소설은 1, 2부로 나뉘어 강주룡의 삶을 자상히 이야기한다. 1부는 스물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섯 살 연하의 최전빈과 혼례를 치르고, 남편을 따라 독립군 부대에 들어가며, 가족을 따라 강계에서 간도, 다시 사리원으로 옮겨 간 시절의 이야기다. 2부는 사리원을 떠나 도착한 평양에서 고무 공장 일을 하며 모던 걸을 꿈꾸면서도, 파업단에 가입하고 정달헌과 함께 적색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며 공장주들에게 투쟁하다 끝내 을밀대 지붕 위에 오르고야 마는 순간까지를 그린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1부도 2부도 아닌 ‘병’이라는 장이다. 작가는 강주룡의 사랑이나 삶에 대해 채 설명하기도 전에 단식을 하며 투쟁 중인 강주룡을,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맞닥뜨리게 한다.
오래 주렸다. _본문에서
압축적이고 긴장된 첫 문장은 단번에 우리를 사로잡는다. “타인에게 폭력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를 잡아먹는 뒤집어진 인간, 하지만 저항의 존엄을 끝까지 상실하지 않는 인간”(심사평 중)인 강주룡을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또한 무언가 조금은 뒤집어져야 한다는 듯이.
“앞으로 너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일하는 여성 영웅이 필요하다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주룡은 평생 처음으로 제가 고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풀고 옷을 벗을지 옷을 벗고 머리를 풀지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부모를 따라서 이주하고, 시집을 가래서 가고, 서방이 독립군을 한대서 따라가고, 그런 식으로 살아온 주룡에게는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고무 공장 직공이 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일말 서러운 일일지언정. _본문에서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은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다. 수상 기념 인터뷰에서 작가는 ‘일하는 여성 영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강주룡을 소설화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있었다’거나 ‘알게 되었다’가 아니라, ‘필요하다’라는 생각에서였다고. 작가는 〈동광〉 제23호 인터뷰를 비롯한 강주룡의 남은 기록을 찾아 읽고 공부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 탄탄한 묘사와 완성된 세계를 만들어냈다. 강인한 진짜 여성 캐릭터인 ‘체공녀 강주룡’을 찾아냈다.
다시 시집갈 마음도 없고, 부양할 가족이 없으니 집이니 땅이니 하는 것도 관심 없다. 그저 제 한 몸 재미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극장 구경도 하고. 저 커피에도 맛을 들이고. 양장도 맞춰보고. 빼딱구두에 실크 스타킹이니 하는 것도 신어보고. 고무 냄새 나는 보리밥 먹어가며 내가 번 돈, 날 위해 쓰지 않으면 어디에 쓴담. _본문에서
시방까지 배운 바론 노동자가 으뜸이구 근본 되는 계급인데 실지로는 에리뜨들이 계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보구 있다. 이거이 최근 나의 불만입네다. _본문에서
내 목숨을 내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주시라요. _본문에서
작가는 강주룡이야말로 ‘자신의 대단함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위대함을 지닌 인물’이며, ‘그래서 더더욱 지금 시점에서 호출해야 할 사람’이며 ‘매우 현대적인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모든 전기 소설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을 읽노라면 그걸 따질 틈도 없이 ‘강주룡’이라는 인물의 매혹적인 실재에 그저 동의하고야 만다.
강주룡이 평양 을밀대의 지붕 위로 올라간 지 9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때로부터 얼마큼이나 뒤집어져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저기 저 지붕 위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어쩌면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것도.
■ 추천사
일제 강점의 역사는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문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주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지 못했다는 역사적 한정은 인간을 이해하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젠더 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한데, 예컨대 우리는 싸우거나 고뇌하는 남성 인물과 상처 입고 인내하는 여성 인물을 오랫동안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체공녀 강주룡》은 이러한 오래된 상상력의 한계를 매우 명쾌하고 단호하게 돌파한다. 싸우고 고뇌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이 살아 있는 인물은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를 사로잡는다. 거침없이 나아가되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으나 자기 연민이나 감상에 젖지 않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여성 서사를 만난다.
여성 수난 서사도 피해자 서사도 아닌 이야기에 가부장제와 식민주의의 운명에 눈물지었던 할머니들과, 왜곡되지 않는 여성의 이름을 얻고 싶은 오늘의 손녀들이 함께 공명한다. 그래서 ‘주룡’은 과거의 인물이되 《체공녀 강주룡》은 지금의 소설이다. _서영인(문학평론가)
기아는 가장 지독한 사회적 전염병이다. 굶주림은 자아를 잠식하고, 육체가 지닌 최소한의 존엄마저 피폐하게 만들며, 주변의 타인마저 파괴한다. 《체공녀 강주룡》의 압도적인 첫 장면은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강주룡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수면마저 앗아간 극도의 허기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그는 무언가를 씹어서 연하게 만들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상상을 한다. 강주룡의 손은 목구멍으로 들어가고 그는 천천히 자신을 씹어 먹는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간수의 소리를 듣자 강주룡은 몸을 세우고 저항하는 인간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타인에게 폭력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를 잡아먹는 뒤집어진 인간, 하지만 저항의 존엄을 끝까지 상실하지 않는 인간. 그가 바로 강주룡이다.
1925년 최서해는 《기아와 살육》에서 굶주림을 통해 영혼이 파괴된 인간 야수의 모습을 기념비적으로 보여주었다. 대략 100년의 시차를 두고 박서련은 굶주림의 고통을 자신의 내면으로 삼키고 이를 반항의 원동력으로 소진하는 인간을 역사의 거대한 망각 속에서 발견해, 잊을 수 없는 문학의 주인공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최서해의 작명 감각을 살짝 빌려 와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아와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_서희원(문학평론가)
예심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던 순간 가슴이 뛰었고 최종심에서 수상작으로 결정되자 내가 상을 받은 듯이 기뻤다. 내가 이 소설을 편애한 기준은 단순하다. 소설을 읽다가 그 속의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럼 볼 것도 없이 잘 쓴 소설이다.
소설 속 주룡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 친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투박하고 단순한 언어와 외모, 내내 화평하다가도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는 성미, 그 속에 감춰진 풍성하고 화사한 감성,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볼 수 있는 히쭉 웃음까지. 중학교쯤 되는 어느 시절 죽고 못 살던 단짝 친구를 무심코 펼친 원고 속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조선 최초 고공 농성자라는 주룡의 역사적 가치보다도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온 건 그런 거였다. 소설 속 인물과 나 사이에 오래된 영혼의 교류가 존재한다는 느낌. 내가 한때 추구했으나 이제는 그 기억조차 빛바래버린 어떤 욕망을 소설 속 인물이 싱싱하게 구현하고 있을 때, 나 또한 그와 함께 몸속에 생생한 것이 다시 날뛰게 되었다고 고마워하게 되는 그런 기분 말이다. _심윤경(소설가)
원고를 펼침과 동시에 1900년대 초반으로 스윽 빨려 들어가 주인공의 삶에 이입해 들어갔다.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당시의 시대상, 생활상, 인간 군상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체험했다. 간도와 평양을 무대로 한 광활한 서사를 따라가며 소설이라는 장르만이 줄 수 있는 ‘읽는 쾌감’을 원 없이 맛본 것은 물론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인물과 묘사와 사건과 이동이라는,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는 요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배치된 소설을 오랫동안 읽지 못했다는 것을. 그런 소설에 목말라 있었다는 것을. 탄탄한 묘사와 완성된 세계, 강인하고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탄생시킨 이 강렬한 서사가 기존의 모든 틀이 무너져 내리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_정아은(소설가)
《체공녀 강주룡》은 돌진하고 분출하며 꿈틀거린다. 놀라운 생동감으로 역사의 책갈피 깊숙이 숨어 있는 아름다운 인간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체공녀 강주룡》은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기 위한 뒤늦은 심폐소생술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고 느끼고 쓰다듬어주어야 할 소중한 존재와의 눈부신 만남이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고 싶은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_정여울(작가)
도식화의 유혹을 이기고 역사 속의 인물을 상상하는 소설적 힘이 대단하다. 소설 《체공녀 강주룡》에서 강주룡이라는 근대 초기 여성 인물의 행로는 당장의 막막한 시대 현실에 제약되면서도 살아 있는 감정과 의지, 욕망을 충실히 표현한다. 전체적으로 크고 굵직한 서사는 작고 세세한 우연의 활동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시대의 굴곡진 흐름과 인간사의 복잡하고 미묘한 구석을 함께 그러안는다. 여성,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강주룡의 현대성은 그 드러난 행적이 아니라, 그 자신도 잘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치러졌을 한 인간의 존엄성의 항거, 굴욕과 자존의 내밀한 순간들에 의해 섬세하게 포착된다. 유연한 문장, 웅숭깊은 서사의 호흡도 작가의 만만찮은 인간 이해를 증거한다. _정홍수(문학평론가)
당연하게도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쓰는가만큼이나 중요하다. 박서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수많은 장면 중 하나에 불과했을 평양 을밀대의 지붕 농성 사진을 흘려버리지 않고 포착했다. 먼 과거의 케케묵은 이야기일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당시 그녀들이 외치던 구호와 오늘의 노동자들이 외치는 구호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강주룡을 찾아낸 박서련의 매서운 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주룡이라는 인물에 반했고 그녀는 소설 속에서 다시 살아나 나를 일깨워준다. _하성란(소설가)
가난한 간도 땅 신혼방과 항일유격대 본거지, 평양 고무신 공장과 을밀대를 섬세하면서도 거칠 것 없는 주인공을 따라 나도 마구 쏘다녔다. 푹 빠져 읽었다는 소리다.
휴전선 철책 아래 갇힌 시기 동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북방의 장쾌한 상상력이 이런 게 아닐까, 하면서.
이렇게 근사한 소설, 참으로 오랜만이다. _한창훈(소설가)
■ 작가의 말
이후로 길지 않으나 짧다 하기도 어려운 시간이 지났다. 나는 종종 이 책에 대한 질문을 듣고, 꼭 이 책에 대한 질문이 아니어도 이 책과 관련된 답변을 하기도 한다. 가령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소설 속 인물이 누구냐고 하면, 언제나 답은 강주룡이다. 다른 대부분의 인물들은 완전히 내 속에서 나왔으나 강주룡은 내가 역사에서 빌려 온 사람이고, 애초에 내가 그에게 그토록 반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아예 쓰지도 않았을 터라서.
쓰는 일이 고되다고 느낄 때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전의 나를 떠올린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이게 나의 마지막 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각오로 쓴 이 소설이 첫 책이 되었다는 것은 내 자존의 가장 깊은 근거 가운데 하나다.
나는 썼고, 내가 쓴 소설이 나를 살렸다.
■ 본문에서
씹어서 연하게 만든 것이 목구멍을 지나가는 느낌이 어땠는지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침만큼은 아직 나오지만 넘어가지 않고 입술 양옆에 고이기만 한다. 목구멍이 거칠어져 일부러 마른침을 삼켜보려 할 때마다 부대끼고 거슬린다. 주룡은 나무를 떠올린다.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면, 우선 식도를 지나갈 때 죽은 나무의 좁은 옹이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내장들은 손이 스치는 대로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이다. 그대로 뒷구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뽑고 어깨를 구겨 넣고, 머리도, 나머지 한 팔도 넣으면…… 배가 부르겠지. 나는 뒤집히겠지.
시집올 때야 이런 날이 올 줄을 어찌 내다보았으랴. 솔직한 말로 주룡은 나라가 무엇이고 독립은 또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나를 지켜주지도 돌보아주지도 못한 나라가 독립은 해서 무슨 소용인가. 나라의 이름 같은 것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내 가족이 굶지 않고 춥지 않게만 살면 됐지. 주룡의 생각은 그랬다. 떳떳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마음이었다. 독립군 바람이 든 어린 서방에게 기어이 가려거든 저를 데려가라 우긴 것도 서방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다.
주룡은 공을 독차지하고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전빈이 언젠가 했던 말처럼 주룡이 독립을 원하는 것은 제 임자 때문이다.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생각거니 저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이 분명합네다. 우리가 사람인 것을, 그것도 저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우리 손으로 보여주자면 저 강덕삼이 형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단결된 뜻을 총파업으로 보여주어야 됩네다. 내래 이레인가 여드레인가 조합원 교육 배워놓은 거이 다인 햇병아리지마는 감히 힘주어 다시 말하고자 합네다. 총파업 선봉에 이 강주룡이가 설 것입네다.
주룡을 처음 만나고 돌아온 날 달헌은 제 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내래 언시에 싸우구 싶다 했습네까. 세상에 싸우기 좋아하는 이가 있답데까? 싸우구 싶다는 거이 순 거짓입네다. 싸움이 좋은 거이 아이라 이기구 싶은 거입네다.
■ 차례
병
1부
간도
옥
황해
2부
평양
역
작가의 말
개정판 작가의 말
추천의 말
부록 — 〈동광〉 제23호
참고문헌
철원에서 태어났다. 2005년부터 소설을 썼다. 2018년 《체공녀 강주룡》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SF어워드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