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바람피울 줄 몰라서 참은 줄 알아? 나도 할 수 있어, 까짓 원나잇 할 수 있다고!” 무려 5년을 연애한 약혼자의 배신. 그것도 머나먼 타국으로 서프라이즈 하러 왔다가 마주한 눈 뜨고 못 볼 추태에 서현은 완전히 무너졌다. 콜걸이 분명한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객실로 들어가는 손에 빛나는 건 자신이 결혼 예물로 미리 사준 값비싼 명품 시계. 구역질이 치밀어 마시기 시작한 술이 선을 넘은 건 한순간이었다. 미니바를 비우고 룸 서비스를 시키고. 빈 술병이 늘어갈수록 오기, 아니 객기가 치밀었다. 자신이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열심히 허리띠 졸라매는 동안, 저 새끼는 매번 저러고 다녔겠구나 싶어 이가 갈렸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세심하고 다정해 의심의 ‘의’자도 떠올린 적 없던 지난날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던가 깨닫자 스스로에 대한 살기가 폭발했다. 짝사랑 4년, 연애 5년. 철든 이후 임서현의 인생엔 오로지 손진우 그 새끼만 존재했는데. 꽃 같은 청춘을 엿같은 놈에게 허비했다는 억울함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구든 걸리기만 해. 제일 먼저 눈 맞는 놈이랑 바로 자 버릴 거야! 술기운이든 분노든 저 망할 놈에게 보란 듯이 나도 원나잇 저지르고 깨끗이 돌아서리라. 퇴로를 불태우는 전장의 장수처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위해 호텔 라운지 바로 향했다. 조신하게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던지고 하나로 올려 묶은 긴 머리를 풀어헤치자 목적이 분명한 옷차림에 가까워졌다. “그래, 임서현. 저질러 버려. 틀을 깨버리라고!” 늘씬한 몸을 감싼 슬립 원피스가 은근한 조명에 유혹하듯 반짝였다.